조선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흥평리에서 덕대산 산성싸움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덕대산 산성싸움」은 고려 말의 장군 이미숭(李美崇)과 최신(崔信)이 충의군을 이끌고 덕대산에 들어와 성을 쌓고 이성계(李成桂)[1335~1408]에게 항거하며 전투를 벌이다가 조선 관군에게 패하였다는 인물 전설이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는 봉황대에 올라 감회를 읊은 시. 「봉황대시(鳳凰臺詩)」는 유호인, 박필문, 이성순(李性淳), 이면승(李勉昇), 정대용, 정종원 등이 김천시 교동 820-1번지 연화지(蓮花池) 가운데에 있는 봉황대(鳳凰臺)에 올라 시흥(詩興)을 읊은 한시이다. 금릉(金陵)[현 김천] 봉황대는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서 역장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연안이씨 역장묘」는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의 매봉산 기슭에 이말정(李末丁)[1422~1474]의 묘가 아래에 있고 후손의 묘가 위에 있는 역장(逆葬)을 써서 굴묘 수난을 면하게 하였다는 이호민(李好閔)[1553~1634]의 풍수담이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
-
개항기 김천 출신 정환덕(鄭煥悳)이 궁중의 비사를 기술한 일기문. 고종과 순종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던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 정환덕(鄭煥悳)[1857〜1944]이 궁궐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여러 일들의 보고 들은 바를 정리하여 비망록을 만들었고, 후에 인척에게 부탁하여 『남가록(南柯錄)』으로 간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남가록』 원본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에 간행된 이숭인(李崇仁)의 시문집. 이숭인[1347~1392]의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고려 공민왕 때 등제하여 숙옹부승(肅雍府丞)을 거쳐 장흥고사(長興庫使)에 올랐다. 김구용(金九容)·정도전(鄭道傳) 등과 실록을 찬수했으며, 한때 사대문서(事大文書)를 지어 문명(...
-
1957년 박종화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쓴 대하 역사 소설.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1901~1981]가 1954년 9월 13일부터 1957년 4월 18일까지 총 946회로 『조선일보』에 연재한 당시 우리 소설사상 가장 긴 장편 소설이다. 『임진왜란』에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일대에서 벌어진 김산 전투가 소개되어 있다. 작품의 서설에서 창작...
-
2002년 KBS의 인기 개그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끈 코너 중에 ‘생활 사투리’가 있었다. 각각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대표하는 개그맨들이 상황에 다른 표준말을 각 지역 사투리가 섞인 상황어로 바꾸어 표현하면서 안방의 웃음을 자아냈다. 표준어 : 야! 그러지 좀 마! 충청도 : 그만 좀 혀~ 전라도 : 시방 그만 몬두겄냐잉?...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강평(江平)의 ‘강(江)’자와 구곡(九曲)의 ‘곡(曲)’자를 따서 강곡(江曲)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조마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구곡·월곡(月谷)·강평이 통합되어 김천군 조마면 강곡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조마면 강곡동이 되었고, 1962년 강곡1동·강곡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
-
1904년 현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창설된 향약. 향약은 향촌 규약(鄕村規約)의 준말로, 향촌의 덕화 및 상호 협조를 위하여 만든 규약이다. 향약은 숭유 배불 정책에 의해 조선 시대 양반들이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 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는 등, 향촌 자치를 통해 하층민을 통제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이라고 할 수...
-
조선 시대 김산군, 지례현, 개령현에 설치한 객사의 터. 객사(客舍)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館舍)이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였다. 김천 지역에는 조선 시대 김산군을 비롯해 지례현과 개령현에 각각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359번지에 설치하였던 김산군 객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미상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 있던 경상북도 미두검사소 김천 지역 지소.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주요 농산물은 미곡과 대두였다. 일제는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구축한 식민지 지주제를 기반으로 조선의 미곡 증산을 목표로 산미 증식 계획을 강압적으로 추진하였다. 당시 생산된 미곡의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곡물 품질에 대한 검사가 요청되었다....
-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이우배(李禹培)와 이영배(李英培)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원 시조는 신라 초 군무를 총괄하던 아찬 이알평(李謁平)이고, 중시조는 신라 후기 이거명(李居明)이다. 신라 개국 초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고위 문무반을 배출해 온 경주이씨 가문은 31세 때 이르러 이우배와 이영배 형제가 조선 숙종...
-
정풍국(鄭豊國)을 시조로 하고 정붕(鄭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경주정씨의 원 시조는 신라 건국 초기 6촌(村)의 한 부장인 지백호(智伯虎)로서 정씨 성은 뒤에 사성(賜姓)된 것이다. 30세(世)에 이르러 정풍국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32세에 이르러 후손들이 영일과 동래로 본관을 나누었다. 김천 지역의 경주정씨는 조선 개국공신으...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918년 왕건(王建)[877~943]이 건국한 고려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오늘날의 김천시(金泉市)는 1995년 1월 전국적인 지방 행정의 개편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金陵郡)이 통합되면서 확정되었다. 고려시대의 현 김천 지역에는 처음에는 속...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김천시는 예로부터 그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렸다. 경상북도 서남부의 관문으로 소백산맥 서남쪽으로 뻗어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와 접경을 이루고 시의 중심부를 감천과 직지천이 관통하고 있다. 황악산, 대덕산, 삼도봉, 수도산 등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산세가 수려하고 자...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 마을에 활을 쏘는 사장(射場)인 관덕정(觀德亭)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관덕정에서 활을 쏘면 이웃한 여배리 속수(束水)까지 날아가서 그곳까지 가서 화살을 주워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조선 말 지례군 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활람·새터·원당·구수골[九水谷]·고석·양산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관덕리로 개편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개령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탄동(炭洞)·가척(加尺)·장내(牆內)가 통합되어 김천군 곡송면 광덕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광덕동으로 개칭되었다. 1971년 가척이 광덕1동, 탄동·장내가 광덕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 동...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고갯길. 지방도 906호선이 지나는 괘방령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보면 괘방령(掛榜嶺)이라 기록되어 있다. 『산경표(山經表)』에는 계방산(桂榜山)이라 적혀 있다. 현지 주민들은 ‘괘뱅이’라고 발음한다. 요즘 나오는 일부 지도에는 궤방령(机榜嶺)이나 개방령이라 적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괘뱅이...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지례향교(知禮鄕校)가 세워지면서부터 교동(校洞), 교촌(校村), 향교마 등으로 불리었다.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교리·범박골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교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교리로 개칭되었고, 1971년 교1리·교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면 교리가 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 전승(口碑傳承)은 행위나 물질이 아니라 말로 전승되는 문화를 뜻하는데, 말로 전승되는 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비 문학이다. 구비 문학은 문자로 기록되는 기록 문학의 모태이면서 말이 존재하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구비 문학의 갈래로는 설화·민요·판소리·탈춤...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고려와 조선에서 문신을 지낸 문경공 독수와(獨樹窩) 권진(權軫)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권희정이다. 권세호(權世豪)는 어려서부터 재종숙 죽림 권산해(權山海) 밑에서 학업을 닦았다. 후에 권세호는 한산군수(韓山郡守)가 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났다. 그는 평소 권산해를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권산해는 14...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형숙(亨叔), 호는 송학(松鶴). 안동 권씨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산군수 권세호(權世豪)이고, 아버지는 권당(權鏜)이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발한 할아버지 권세호가 벼슬을 버리고 한양에서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로 은거하였다. 권응시(...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보호수.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산51번지 섬계서원(剡溪書院) 경내에 위치하는 노거수(老巨樹)이자 보호수이다. 보호수의 지정 명칭이 여전히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인 까닭은 금릉군이 1995년 1월 행정 통폐합 조치에 따라 김천시와 통합되기 이전에 지정됐기 때문이다. 금릉 조룡...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김산군 과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김천군 과곡면 금평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금평동으로, 1949년 금릉군 구성면 금평동으로 개칭되었다. 1971년 금곡(金谷)·광수(廣首)가 금평1동, 두곡(豆谷)·새터[일명 고숲]가 금평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이(里)로 바꾸어 금평리가 되...
-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이환(金爾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김녕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며 본관을 김해(金海)로 써오다가 조선 헌종 때 경순왕(敬順王)의 8대손인 김시흥(金時興)의 후손들이 본관을 김녕(金寧)으로 고쳤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동북병마사로 있었으며, 삼별초의 난을 진입하는 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진...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독립운동가. 김단야(金丹冶)는 1901년 1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69번지에서 김종원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태연이다. 추성(秋星), 달연(達淵), 주(柱)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1908년 4월 개진학교에 입학했다가 1909년 4월 진명학교(進明學敎)로 옮겼고, 1910년 4월에는 영진학교...
-
구한말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있었던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운동.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인해 청일 전쟁과 갑오개혁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895년 8월 일본에 의해 을미 명성왕후 시해 사건이 있었고, 11월에는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에 각지의 유림들이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 운동을 일으켰다....
-
남북국 시대부터 1499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757년(경덕왕 16)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에 따라 개령군(開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개령군에서 경산부(京山府)[현 성주군 일대]로 이속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에는 “김산현(金山縣)은 경덕왕이 주현의 이름을...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천주교 사제·교육자. 1880년대에 이르러 조선 왕조는 쇄국 정책을 중단하고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묵인되면서 각 교회들은 포교 활동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 대한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학교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당시 천주 교회에서도 조선 교구를 통괄하던 귀스타브 뮈텔(Gustave Charles Marie...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길(金壽吉)은 1902년 1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대구 지역에서는 3월 8일 기독교계와 계성학교·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계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수길은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시위대...
-
조선 전기 김천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아버지는 판서 김수덕(金修德)이며, 부인은 옥산 장씨이다. 아들로 김화(金華), 김경(金鏡), 김감(金鑑)을 두었다. 김용초(金用超)[?~1406]는 고려 말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고 곧으며 무재(武才)가 있었다. 충정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관이면서도 무예(武藝)가 뛰어나 활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환(金容煥)은 1873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김기환이다. 자는 관옥, 호는 운강이다. 명릉참봉과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경술국치 이후 귀향하여 유림 향약소로부터 충렬공 삼부자의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을 받았다. 김용환은 조선의 혼을 일깨우고자 선조 경무공의 묘비 용두에 태극을 새겨 넣었는데, 이...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녹색 성장이다. 현재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홍수 예방,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하천 유역의 문화와 관광 자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 또한 주목할 말한 일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자연 환경인 하천이 가진 친환경적이면서 녹색 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하...
-
김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일컫는 상징어가 삼산이수(三山二水)라면 찬란했던 김천의 문화 예술을 표현하는 상징어는 단연 영남 제일 문향(嶺南第一文鄕)이라 할 것이다. 김천 지방은 삼한 시대 감문국(甘文國)으로부터 신라,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교통을 배경으로 전략적 요충지로서 위상을 유지했는데 특히 고려 7대 목종은 군호(君號)를 김천의 옛 지명의 하나인 개령을 따...
-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로부터 학맥을 이어받은 김종직(金宗直)은 58세 때인 1489년(성종 20)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아내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임지[개령현감] 따라 면학하던 곳이요, 아내와 아들 김목아(金木兒)가 묻혀 있어 가장 애착이 가는 김천의 백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서당인 경렴당(景濂堂)을 짓고 평소 공부하던 경서(經書) 등 천 권의 서책을 옮겨 학문 강론의...
-
해방 이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되었던 민간 자치 담당 기구. 김천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무렵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변경되어 발족한 것이며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김천 지역의 자치를 담당한 민간 기구이다. 1945년 9월 초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김천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천인민위원회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이...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김천청년동맹은 개인의 수양, 신교육 보급, 풍속 개량, 농촌 개량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1921년 8월 김천군에서 결성된 금릉청년회는 1923년 3월 문화계몽운동에서 사회주의적 노선으로 전환을 시도한 전조선청년당대회에 참가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청년 운동의 전국 지도 기관으로 결성된 조선청년총동맹에 가입하였다...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여덟 곳의 관광 명소. 김천팔경은 2020년 10월 관광객 유치 및 홍보를 위하여 김천시에 산재한 관광 자원 중 시민과 관광객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여덟 곳의 관광 명소를 말한다. 김천팔경은 각각 연화지 벚꽃, 오봉저수지 둘레길, 난함산 일출·일몰, 사명대사 공원 평화의 탑 야경, 직지사 단풍나무길, 부항댐 출렁다리, 청암사 인현왕후길, 수도산 자작나무 숲...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준백(俊伯), 호는 눌암(訥菴). 이조판서 김불비(金不比)의 8세손이다. 김한영(金漢英)[1637~1712]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즐겨하였고 언행이 엄하고 무거워 어른들이 아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으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아버...
-
김수로(金首露)를 시조로 하고 김강석(金綱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 삼현파(金海金氏三賢派)는 판도판서공휘관파(版圖判書公諱菅派)의 별칭으로 중시조인 김관(金管)이 고려 말 판도판서(版圖判書)라는 벼슬을 지냄으로 해서 비롯되었다. 조선 정종 때 4대에 걸쳐 김극일(金克一)·김일손(金馹孫)·김대유(金大有) 등 세 현인이 한 집안에서...
-
김수로(金首露)를 시조로 하고 김희수(金羲壽)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 안경공파(金海金氏安敬公派)의 시조는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이며, 중시조는 고려 말 중대광(重大匡)에 오르고 김녕군(金寧君)에 봉군된 김목경(金牧卿)이다. 3세(世) 김도문(金到門)은 조선 전기의 삼사부사(三司副使), 5세 김효원(金孝源)은 병조참의, 6세 김진손...
-
김수로(金首露)를 시조로 하고 김언효(金彦孝)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의 시조는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이며, 고려 시대 영천군사(永川郡事) 김불비(金不比)를 중시조로 한다. 2세(世) 김수광(金秀光)은 조선 세조 때 경상도 도사, 5세 김중손(金仲孫)이 조선 중종 때 지례 현감을 역임하면서 김천과 인연을 맺었다. 김해김씨...
-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문략(文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남평문씨의 시조는 문다성으로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때 벽상공신으로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다. 전라도 나주 남평의 연목 석함(石函)에서 태어나 ‘문(文)’이란 글자가 돌에 새겨져 있어 자비왕이 ‘문(文)’을 성씨로 내렸다고 한다. 고려 숙종 때 좌승선(左承宣)을 지낸 문익...
-
개령초등학교 를 끼고 돌아 계림사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부리에서 양천리로 넘어가는 뒷고개[일명 말랑고개] 아래에 고풍스런 기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랜 세월 대나무 밭에 들어앉아 음침스럽기 짝이 없던 이 집은 2008년 말 비로소 주변에 있던 대나무들을 걷어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숲을 따라 난 마당을 가로지르면...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직을 그만둔 연로한 노인들이 마을로 들어와 노년을 평온하게 보내었다 하여 노리실(老夷室) 또는 노곡(老谷)이라 하였다. 1759년(영조 35) 선비 박유춘(朴有春)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노송이 많아 노곡이라 했다는 설, 험준한 백마산과 비백산 일대에 노루가 많아 노루실 또는 장곡(獐谷)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중기까지 개...
-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고 구인리(具仁里)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능성구씨는 고려 말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한다. 7세(世)에 이르러 11개 파로 분파되었는데, 김천 지역의 후손은 조선 태조 때 도원수(都元帥)를 지낸 구성로(具成老)를 중시조로 하는 도원수파에 속한다...
-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다수동은 1914년 새실[일명 바깥새실, 구신기, 신기]과 이로리를 통합하여 붙인 명칭이다. 새실은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고, 이로리는 임진왜란 때 두 노인이 피난 와서 화를 면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914년 김산군 미곡면 이로동, 군대면 금평동, 파미면 하지동 일부를 김천군 금릉면 다수동이 되었고, 1931년...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남쪽 골짜기인 모팅이에 야생 밤나무가 많아 대율(大栗)이라 하였다. 달리 한배미라고도 한다.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한배미·고념(古念)·웃마·주막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대율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대율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지례면 대율리가 되었다. 대율리는...
-
조선 왕조의 개국에 반대한 고려의 충의군이 김천 덕대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고려 말 우왕 때 벌어진 요동정벌 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의 급진적 개혁파와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왕조의 개창에 반대한 정몽주(鄭夢周)는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선죽교에서 격살됨으로써 고려 왕...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대덕산(大德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덕을 쌓고 살자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지례군 상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덕산·주치(走峙)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덕산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덕산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덕산1리·덕산2리로 나누어졌...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 입구에 부항천으로 합류하는 도랑을 가로지르는 큰 돌다리와 정자나무가 있어 마을로 들어가자면 돌다리를 건너고 정자나무를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돌아실·도래실·돌곡이라 하고 한자로 도곡(道谷)으로 표기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도래실·송천(松川)·신평(新坪)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도곡리...
-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화요 3인조’, ‘상해 트로이카’, ‘붉은 광장에 떨어진 붉은 꽃’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비운의 독립운동가 김단야(金丹冶). 김단야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상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라는 굴레에 갇혀 오랫동안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07년 8월 16일 복권되어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인물이다. 서른일곱 살 꽃다운 청춘을 살다간 비운의 독...
-
방짜유기란 놋쇠를 녹여 두드려 만든 생활 용구를 말한다. 김천 지역은 예부터 경기도 안성과 충청북도 충주·전라북도 이리[현 익산시]와 함께 유기 생산지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중에서도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의 명산지로는 김천이 단연 으뜸이었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말까지 지금도 약수동 또는 약물내기로 불리는 김천시 양천동의 거창 방면 국도 변에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유기 공방...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지례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갈계·신갈계·말미가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두산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부항면 두산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김천시 부항면 두산리가 되었다. 갈계 앞으로 갈계천이 동쪽으로 흘러 말미 앞으로 흘러든다. 두산리는 부항면 소재지인 유촌리에서 북쪽으로...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매년 개최되는, 매계 조위를 추모하는 학생 백일장. 매계 백일장은 조선 성종 때 문장가로 명성을 얻었던 김천 출신의 창녕 조씨 조위(曺偉)의 호를 딴 백일장이다. 조위는 성종의 명으로 승려 의침(義砧)과 함께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를 최초로 언해한 『두시언해(杜詩諺解)』를 완성하고 우리나라 유배 가사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만분가(萬憤歌...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시월상달에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 지내는 제사. 묘제(墓祭)는 묘소에 가서 드리는 제사를 총칭한다. 일반적인 묘제는 장례 기간에 봉분을 만든 후 올리는 묘제인 장례와 명절인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등에 올리는 묘제로 나눌 수 있다. 그렇지만 김천 지역에서는 5대조 이상의 조상으로서 기제사를 드리지 않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묘사(墓祀)라 칭한다....
-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주조 공장 일꾼들이 물지게로 과하주 빚는다고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나르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그때 이 동네 사람들도 품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남산동 과하천 인근에 사는 이재탁[80세] 어르신에게 과하주와 과하천은 아직도 김천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하천의 본디 이름은 김천(金泉)이라고 하는 이 고장의 지명이 유래된 남산동의 ‘김...
-
“정월 대보름날 전후로 주조 공장 일꾼들이 물지게로 과하주 빚는다고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나르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그때 이 동네 사람들도 품 팔러 다니기도 했지.” 남산동 과하천 인근에 사는 이재탁[80세] 어르신에게 과하주와 과하천은 아직도 김천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하천의 본디 이름은 김천(金泉)이라고 하는 이 고장의 지명이 유래된 남산동의 ‘김...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릉(武陵)의 ‘무(武)’자와 신안(新安)의 ‘안(安)’자를 따서 무안(武安)이라 하였다. 조선 말 성주군 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거리(三巨里)·외안·기산(箕山)·무릉·신안·통정(桶井)·대동(大洞)이 통합되어 김천군 감천면 무안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무안1동·무안2동·무안3동으로...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엄격한 유교 사회인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치하를 거치는 과정에서 문화(文化)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못해 왔다. 광복 후에 들어와서야 사회 운동 차원의 일부 국민 재건 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거의 관(官) 주도의 행사에 그쳐 진정한 의미의 문화 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김천시...
-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현대시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민동선(閔東宣)[1902~1994]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본리에서 태어났다. 양정고보와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보인상업고등학교, 성동고등학교, 김천고보[현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 및 한문 교사를 지냈다. 기미년 만세운동 당시 문경 김룡사 지방학림 학생이었는데 스님들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일명 김룡사 지방학...
-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로 하고 박송백(朴松栢)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밀양박씨 복야공파(僕射公派)는 고려 시대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37세(世) 박언인(朴彦仁)의 후손이다. 중시조는 45세 박흥거(朴興居)로 삼는데, 박흥거의 호가 이요당(二樂堂)인 관계로 이요당공파(二樂堂公派)라고도 한다. 55세 박송백이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안(朴泰安)은 1898년 6월 14일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小舍)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은 황금정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 같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와 함께 김...
-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로 하고 박정원(朴鼎元)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반남박씨는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고 고려 말 반남현(潘南縣) 호장을 지낸 박응주(朴應珠)를 중시조로 한다. 4세(世) 박수(朴秀)는 밀직부사(密直副使), 9세 박숙(朴塾)이 좌승지(左承旨)를 지내어 후손들이 승지공파(承旨公派)라 했는데 김천 지역의 반남박씨는 승지공파...
-
여말선초 김천으로 은거한 문신. 백귀선(白貴璇)은 고려 말기 승선으로 재직하다가 조선이 개창되자 벼슬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 김천으로 이거해 정착하였다. 김천의 금산동은 조부인 금릉부원군의 봉지(封地)였다. 조선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거부하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백귀선의 자손들도 부친의 유지를 이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의...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 백운사는 신라 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제자 전성대사(田成大師)가 창건하였다. 백운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초창 이후부터 조선 고종 때까지 사적 내용 또한 알 수 없다. 1864년(고종 1) 기범대사(琪範大師)가 중창하였다. 그 후 1983년 주지 진일화상(眞...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에 참여한 김천의 관군과 의병.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침공해 오자, 조정에서는 각 지방에 영을 내려 군사를 모았다. 김천 지방에서도 12월 19일 제색군(諸色軍)을 상주진관(尙州鎭管)에 주둔시키고 군기와 군량을 급송하였다. 김산군기감관 정은신, 김산군량감...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보(上寶)·하보(下寶)를 통합하면서 ‘보배 보(寶)’자를 따고 마을이 빛나게 발전하라는 염원을 담아서 ‘빛날 광(光)’자를 써서 보광(寶光)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마을 뒷산 탑골에 조선 정종 때 세워진 보광사가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개령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보·하보가...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울곡리에 있는, 이숭인을 기리기 위한 조선 전기의 사당. 보본사(報本祠)는 고려 말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삼은 (三隱)이라 하는데, 길재 대신 이숭인을 넣기도 한다]의 한 사람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불천위로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숭인은 고려 말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복산(福山)의 ‘복(福)’자와 마전(馬田)의 ‘전(田)’자를 따서 복전(福田)이라 하였다.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마전·하마전·복산이 통합되어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복전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복전동이 되었다. 1971년 복전1동·복전2동으...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하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받들고 이를 세상에 펼치는 종교이다. 어느 나라에 있는 불교든 사실은 석가모니의 학설을 기준으로 삼는데,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기본적으로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로 나뉜다. 한국에 전해진 불교는 일반적으로 대승 불교이다. 한국...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으로 부항천이 굽이쳐 흐르면서 형성된 모래밭을 모래들·사들·사드래·사등(沙等)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말 지례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웃갯절·아랫갯절·사드래·장자동(長子洞)·한적동(閑寂洞)이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사등리로 개편되었다. 1963년 사등1리·사등2리로 나누어졌고, 1949년 금릉군...
-
조선 후기 김천 직지사로 출가한 고승(高僧)이자 의병장.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송운(松雲),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별호는 종봉(鍾峯). 아버지는 임수성(任守成)이다. 사명대사(泗溟大師)[1544~1610]는 직지사에 6년간 머물렀으며 주지를 지냈다. 1575년(선조 8) 왕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인 봉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동종. 문경 김룡사 동종은 1670년(현종 11)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종장(鋳鍾匠)으로 활동한 사인비구(思印比丘)가 만든 종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에 있는 김룡사에서 전해 오던 동종으로, 1995년 직지성보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져 보관, 전시되고 있다. 2...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도를 닦고 불교 교리를 설하는 장소. 불교 사찰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상가라마(Sañghrma)이다. 교단을 구성하는 사중(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음역(音譯)하였고, 나중에 가람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전도(傳道) 초기에는 일정한 주거지를 가지지 않고 불법(佛法)을 전하였으...
-
김천 지역을 흔히 사통팔달의 교통 도시라고 한다. 김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를 중심으로 성주 일대의 가야, 상주의 사벌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주변 소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성장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서기 231년...
-
김천시장은 ‘짐전장’ 또는 ‘큰장’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부터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일본 사람들이 김천시장으로 몰려와 상설 점포를 열고 시장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었으나 한국인 영세 상인들은 큰장의 북쪽으로 밀려나 그곳에 ‘아랫장터’를 형성하고 장사를 하였다. 광복 후 상설 시장이 시내 여러 곳으...
-
김천시장은 ‘짐전장’ 또는 ‘큰장’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부터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일본 사람들이 김천시장으로 몰려와 상설 점포를 열고 시장의 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었으나 한국인 영세 상인들은 큰장의 북쪽으로 밀려나 그곳에 ‘아랫장터’를 형성하고 장사를 하였다. 광복 후 상설 시장이 시내 여러 곳으...
-
1919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에 의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세계사적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였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이 있었다. 이런 국내외적...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례현아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상부리(上部里)라 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부·하부(下部)·장촌(匠村)·동산(東山)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상부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상부리로 개칭되었고, 1993년 상부1리·상부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군...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던 관용 숙소인 상좌원(上佐院)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원(上院)이라 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하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원터[院基]·마드리·무티실이 통합되어 김천군 석현면 상원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상원리가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구성면 상원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 김천시 구성면...
-
정인경(鄭仁卿)을 시조로 하고 정윤홍(鄭允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서산정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의 문하시랑평장사로 있다가 원나라의 건국과 함께 고려로 추방된 정신보(鄭臣保)의 아들 정인경이다. 정인경은 고려에서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상장군이 되고 서산군(瑞山君)에 봉군되어 서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3세(世) 정세충(鄭世忠)은 지제교...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덕이(德以), 호는 남계(南溪), 이명은 서질. 고려 성종 때 거란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동경유수 소손녕(蕭遜寧)과의 담판으로 거란군을 철수하게 하고 강동 6주를 회복하는 데 기여한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徐熙)의 11세손이다. 원주판관을 역임한 서강(徐强)과 양천 허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하고 배윤순(裵允詢)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배씨는 고려의 벽상공신(壁上功臣)인 배위준을 시조로 한다. 2세(世) 배인익(裵仁益)이 문하시랑, 8세 배보손(裵普孫)이 조선 전기 공조판서를 지낸 9세 배규(裵規)가 대사간을 지냈다. 대표적인 인물인 15세 배흥립(裵興立)은 조선 명종 때 무과에 급제하고 흥양현감...
-
여양유(呂良裕)를 시조로 하고 여종도(呂從渡)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여씨는 중국 당나라 때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한 여어모(呂禦侮)를 원조(元組)로 하고 조선 전기 대광공(大匡公) 여양유를 시조로 한다. 여양유는 왜(倭)를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워 삼선대국(三宣大國)에 올랐고 2세(世) 여극회(呂克誨)가 조선 전기에 판서를 지...
-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고 전승선(全承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전씨의 시조는 온조(溫祚)를 도와 백제의 전신인 십제(十濟)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전섭으로, 26세(世)에 전흥(全興)이 성산군(星山君)으로 봉군되면서 성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16세에서 33세에 이르는 동안 17개 본관으로 나뉘었는데 김천 지역의 성산전씨는 성산백...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인 북성(北星)의 ‘성(星)’자를 따서 성촌(星村)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북성·명천(明泉)·명창(命昌)이 통합되어 김천군 곡송면 성촌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성촌동으로 개칭되었다....
-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백귀선(白貴璇)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수원백씨의 시조는 중국 소주(蘇州) 사람으로 당나라 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가 간신의 모함으로 780년 신라로 망명해 고관을 지낸 백우경이다. 신라 말 중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한다. 수원백씨는 29개 파가 있는데 김천에는 그 가운데 1세(世)...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네 명이 숫자를 적은 80매의 종이를 가지고 노는 놀이. 수투는 어른 네 사람이 편을 지어 종이나 가죽 80매에 적힌 숫자풀이를 하며 노는 놀이이다. 이를 수천(數千), 수투전(數鬪牋), 투전(鬪箋) 등이라고도 한다. 초기에는 주로 상류층 남성들이 종이로 만든 도구를 가지고 방안에서 하는 놀이였는데 노는 방법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수투는 몇 자 안...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숙명과 숙경 공주의 태실 터. 숙명·숙경공주 태실 터는 조선 17대 왕인 효종의 3녀 숙명(淑明), 6녀 숙경(淑敬) 두 공주의 태를 안치했던 곳이다. 효종 이후 왕실에서는 한 태봉에 두 태를 안치하거나 요란한 발행 의식을 치르는 일을 삼갔으며, 아예 궁궐 내 정갈한 곳에 안태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안을 물색하였다...
-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명당(明堂)에 조상과 부모의 묘를 써서 집안과 자손의 번영을 염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천군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뒷산에 자리한 연성부원군 이말정(李末丁)의 묘소는 오래전부터 조선 8대 명당의 하나라고 전해져 오는 곳이다. 실제로 많은 풍수가들이 ‘금재낙지지처(金釵落地之處)’, 즉...
-
직지사(直指寺)는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높이 1,111m 황악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직지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수행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자기 자신이 부처요, 그 마음이 곧 불심”이라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맨 앞 글자인 직지(直指)에서...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동(新洞)의 ‘신(新)’자와 안서(安棲)의 ‘안(安)’자를 따서 신안동(新安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조마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죽정(竹汀)·신동·구미(龜尾)·지동·신하(新下)·안서·신기·신촌이 통합되어 김천군 조마면 신안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조마면 신안동이 되었고...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계(新溪)의 ‘신(新)’자와 수왕(水旺)의 ‘왕(旺)’자를 따서 신왕(新旺)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남천면(南川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왕·박리(博里)·용암·신계·송정이 통합되어 김천군 조마면 신왕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조마면 신왕동이 되었다. 1962년 신왕1동·신왕...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해군 때 화순 최씨 최유능이 조마면 신안리에서 이거해 새로 이룬 마을이므로 새터 또는 신평(新坪)이라 하였다. 옛날 마을에 큰비가 내렸을 때 천상봉 골짜기 물이 들이닥쳐 폐동이 되고 새로 마을을 세워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성주군 외증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실(三室)·신평·등터가 통합되어 김천...
-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고 김희발(金希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김씨의 시조는 신라 말 고창[안동]의 성주로서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건충공신에 피봉된 김선평이다. 김선평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과 함께 안동에 침입한 견훤의 대군을 병산(甁山)전투에서 대파하자 왕건은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감천에 예부터 일대 논에 물길을 대는 넓고 큰 물막이 보(洑)를 나무로 쌓아 놓았다. 이 보(洑)를 일컬어 넓은보 또는 널보라고 한 데서 여배 또는 너배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너배·속수(束水)·도틀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여배리가 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여...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견재, 호는 이은(二隱)이다. 성산 여씨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석희이다. 여채룡(呂彩龍)은 1866년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금평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바르고 지기가 곧았으며, 여진룡(呂震龍)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혀 문장이 좋았다고 전한다. 을사...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지리상 마을 모양이 배와 같은 형국이라 마을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으려면 마을 뒤 백마산 골짜기에 밧줄을 매어야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다는 속설에 따라 목숨을 잇는다는 뜻에서 연명(延命)이라 하였다. 실제로 밧줄을 매었다는 배밧골이라는 골짜기 지명이 마을 뒤에 남아 있어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신라 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수오·...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373년(공민왕 22)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 서산 정씨 정윤홍(鄭允弘)이 봉계(鳳溪)로 옮겨 오면서 다섯 아들 정사인(鄭斯仁)·정사의(鄭斯義)·정사예(鄭斯禮)·정사지(鄭斯智)·정사신(鄭斯信)의 이름 끝 자를 각각 따서 인의리, 예지리, 신리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파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봉계에서 분리되어 김천군...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에서 운영하는 농촌 체험 마을. 주민 각자의 옛 솜씨를 모아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 운영함으로써 기억하기 쉽고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옛날솜씨마을이라 명명하였다. 2003년 10월 23일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되어 각종 체험 시설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약 2,644.64㎡ 터에 조경 시설, 휴식 공원, 야외 공연장,...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과 단지봉에서 발원하여 증산면 유성리에서 대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조선 광해군 때 판서를 지낸 정술이 이곳에 놀러 왔다가 바위에 부딪쳐서 흘러가는 냇물이 마치 옥이 굴러가는 것 같으므로 옥동천이라 하였다. 옥동천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修道山)[1,313m]과 단지봉[1,326.7m]을 연결하는 능선 북쪽...
-
동부리를 감싸고 있는 감문산에 오르면 멀리 마을을 회오리쳐 흐르는 감천과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 감문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관학산과 유동산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곳이 지금으로부터 418년 전 동부리를 비롯한 개령 읍민 절반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령 동부리 일대는 수로와...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복룡(伏龍)의 ‘용(龍)’자와 복호(伏虎)의 ‘호(虎)’자를 따서 용호동(龍虎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성주군 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복룡·매화·입암·복호·상평·하평이 통합되어 김천군 감천면 용호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용호1동·용호2동으로 분동되면서 금릉군 감천면 용호동이 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마을 앞 운남산(雲南山)의 이름을 따서 운남동(雲南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개령군 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종상(從上)·석정(石井)·지산·용전의 일부가 병합되어 김천군 남면 운남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운남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운남1동·운남2동으로 분동되었다....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김산군 대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본리(本里)·백운(白雲)·돌모(乭毛)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항면 운수리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대항면 운수동이 되었다. 1971년 운수1동·운수2동·운수3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운수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가 되었다. 동쪽...
-
경상북도 김천시에 전개된, 공자를 존신하는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인(仁)을 도덕의 최고 이념으로 삼는 학문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 시대 이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에 태학(太學)이 설립되고,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논어(論語)』, 『천자문(千字文)』을 전하며 신라에 국학이 건립된 것이 바로 이 점을 말해 준다. 고려 때에는 태조 왕건이 불교를 숭...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산(金山). 자는 무수, 호는 학포(學圃)·해붕(海鵬). 유섭의 후손이다. 유익명(兪益明)[~1455]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무예가 뛰어나 무과를 거쳐 사량만호(蛇梁萬戶)가 되었고, 1427년(세종 9) 세자가 조현(朝見)할 때 사직으로 참여하였다. 1440년(세종 22) 병조참판 황보인(皇甫仁) 등이 장수가...
-
1950년에서 1953년까지 북한이 남한을 침입하여 경상북도 김천시를 포함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전쟁이 개시되어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동안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한반도 전역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민족 간 전쟁으로 유엔 연합군과 중공군이 참전했다는 점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을 띤 전...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절효(節孝)이다. 윤은보(尹殷保)는 지례현[현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구성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일대] 출신이다. 같은 현에 살던 서즐(徐騭)은 이천 서씨 신일의 9세손으로 자는 덕사이고, 호는 남계이다. 윤은보는 서질과 함께 아들이 없는 스승 장지도(張志道)를 친부모 모시듯 극진히 섬겼다. 지례현 출신의 장지도...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별미령과 고당산에서 발원하여 남면 초곡리에서 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율곡천은 농소면 소재지인 월곡리 율곡마을에 이름의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 영조 때 밀양 박씨가 집단으로 마을을 개척한 뒤 선비 김처철이 선산 송림 밤실[일명 율곡]에서 이주해 와서 마을에 밤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이 원래 살던 마을 이름을 따서 율곡이라 하...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지리상 마을의 앞을 가리지 않으면 마을에 우환이 있을 것이라 하여 느티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숨을 은(隱)’자와 ‘수풀 림(林)’자를 써서 은림동(隱林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위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군동·하군동·본동이 통합되어 김천군 위량면 은림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
-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하고 송충기(宋忠己)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은진송씨의 시조는 고려 중기 판원사(判院事)를 지낸 송대원이다.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지면서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대로 식읍으로 하사받아 후손들이 정착한 후 본관을 은진으로 삼았다. 김천 지역의 은진송씨는 송천파(松川派)·다화파(多花派)·미평파(米坪派)로 나뉘며,...
-
임진왜란 당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일본이 오랜 기간 전국 시대를 통하여 전쟁 경험을 쌓고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여 일으킨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당쟁에만 몰두하여 군비가 전무한 상태였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서울까지 오는데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
김석(金錫)을 시조로 하고 김승조(金承祖)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의성김씨의 시조는 경순왕의 아들 김석으로 고려 광종 때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지내고 의성군(義城君)으로 봉군됨으로써 본관을 의성으로 삼았다. 13세(世) 김용초(金用超)가 전라병마절제사를 지냈고, 조선 개국공신에 오르면서 가문이 번성했는데 그 후손 중 김천에는 상금파(上金...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균(李明均)[또는 李銘均]은 1863년 1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조선 성종 대의 청백리로 유명한 충간공 이숭원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일괴(一槐)이다. 가학(家學)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절치부심하던 이명균은 대한광복회에 가입...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이병구(李炳九)는 1862년 8월 1일 경상북도 금릉군 조마면 대방리[현 경상북도 김천리 조마면 대방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치홍(致洪), 호는 초운(樵云)이다. 이병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듬해 3월 허위(許蔿)·강일선(姜馹善) 등과 함께 김산(金山)에서 거의했으나 관...
-
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이문광(李文廣)이며, 셋째 아들이다. 성산 이씨 정언공파의 파조이며, 아들로 이우가 있다. 이우는 세종 때 진주목사를 거쳐 경기좌도수군첨절제사를 지냈으며, 성주군 한개마을로 거처를 옮겨 성산 이씨 집성촌을 이룬 입향조이다. 이여량(李汝良)은 1354년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1380년(우왕 6) 생원시와...
-
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고려 시대 대장군을 지낸 이성간(李成幹)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이회목이며, 이존실은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 이존인(李存仁), 이존의, 이존례(李存禮)가 있다. 아들 이덕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거제현령을 지냈다. 김천의 청백리로 유명한 이약동(李約東)이 손자이다. 이존실(李存實)은 고려 말 군기...
-
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두은. 고려 시대 대장군을 지낸 이성간(李成幹)의 현손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이회목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존의, 이존례(李存禮), 이존실(李存實)이 있다. 이존인(李存仁)[1344~?]은 남달리 총명하였고 형제간의 우애와 효심이 특출하여 촉망을 받았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학으로...
-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고 장홍한(張鴻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인동장씨는 고려 중기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장금용을 시조로 한다.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에 있는 인동장씨는 18세(世) 장잠(張潛)의 후손이다. 장잠은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위기에 처한 스승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자 낙향한 인물이다. 그 후손...
-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미곶[일명 살꼬지]·문곡[일명 연실]·야동·봉명·황소를 통합하여 인동이라 했는데 정확한 경위는 알 길이 없다. 고려 말 국운이 다함을 한탄하며 아포로 낙향한 이사경(李思敬)이 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했다 하여 일대 마을의 지명을 인·의·예·지·신으로 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조선 말 개령군 아포...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천시는 경상북도 남서부 지역의 사회·문화·산업·행정·교통·관광의 중심지이다. 1995년 생활권이 하나였던 김천시와 금릉군이 하나의 통합시를 이루어 김천시가 되었으며 2010년 현재 1개 읍[아포읍], 14개 면[농소면·남면·개령면·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감문면·조마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373년(공민왕 22)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 서산 정씨 정윤홍(鄭允弘)이 봉계(鳳溪)로 옮겨 오면서 다섯 아들 정사인(鄭斯仁)·정사의(鄭斯義)·정사예(鄭斯禮)·정사지(鄭斯智)·정사신(鄭斯信)의 이름 끝 자를 각각 따서 인의리, 예지리, 신리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파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중리·직동(直洞)이 통합...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산에 있는 옛길. 인현왕후길은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청암사에 머물면서 산책했던 길에서 유래하였다. 인현왕후는 장희빈과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패한 후 서인으로 강등되어 전국의 사찰을 떠돌 때 청암사 극락전에 3년간 은거하며 복위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이 기간 동안 청암사에서 수도계곡의 절경지 또는 수도암까지 산책하며 애환을 달래던 길이다. 인...
-
조선 후기 숙종대 인현왕후가 김천 청암사로 부친 편지.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1689년에 폐서인이 되어 김천 청암사 보광전에서 3년간 기거하였다. 인현왕후어제등록은 인현왕후가 복위된 다음 해인 1695년에 청암사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인현왕후어제등록은 간찰의 형태이다. 인현왕후어제등록에는 청암사 스님들에 대한 충심의 고마움과 함께 비녀와 잔과 신을 신...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개령(開寧). 자는 우춘(遇春), 호는 수호자(垂胡子).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임재광이며, 서자로 태어났다. 임기(林芑)는 학문에 특출한 자질을 보였다. 영민하고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으며 관상도 잘 보았다. 부모상을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와 남학(南學)과 동학(東學)에서 역관의 공부를 하였다. 한리학관(漢吏學官)으로 있으면...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은 1907년 9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업이(林業伊), 임기업(林基業), 임송춘(林松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임종업은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23년 4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돌부처가 있어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용암리 방면에서 들어오는 마을 옛 진입로가 있는 북천산 자락에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영조 때 김해 김씨 김우선(金宇善)이 상주에서 이주한 데 이어 경주 이씨 일가가 정착하면서 현재의 입석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는 개령군 농소...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던 작내역(作乃驛)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조선 말 지례군 하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장천(長川)·관평(觀坪)이 통합되어 김천군 석현면 작내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작내리가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구성면 작내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가 되었다. 작내리는 구성면...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 마을 출신으로 목사(牧使)를 역임한 허직(許稷)이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후 힘센 장사에게 바위를 3층으로 쌓게 하였다 하여 장수바위 또는 삼층바위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장바우가 되었고 한자로 장암(壯岩)이라 하였다. 이 바위를 기준으로 위쪽 마을을 상장(上壯)[일명 웃장바우], 아랫마을을 하장(下壯)[일명 아랫장바우]이...
-
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경상도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장을포(張乙浦)이고, 큰아버지는 운봉현감(雲峰縣監)을 지낸 장을해(張乙海)이다. 후손은 없다. 장지도(張志道)[1371~?]는 김천시 지례면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절의가 굳었다. 공민왕 때 향시에 합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기거주지의주사(...
-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일남(李一南)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 사공(司空)을 지낸 이한으로 세거지인 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전주 이씨는 조선을 개국한 22세(世) 이성계(李成桂)를 시작으로 518년간 왕위를 계승하였다. 김천 지역의 전주이씨는 24세인 양녕대군 이제(李禔)를 중시조로 하는 양녕대군파이다....
-
편갈송(片碣頌)을 시조로 하고 편만천(片萬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절강편씨는 명나라 어양총절사(漁陽摠節使)로 있다가 정유재란 때 경략도독(經略都督)으로 조선에 출병하였으나, 간신의 무고로 귀국하지 못하고 귀화한 편갈송을 시조로 한다. 아버지의 귀화 소식을 들은 아들 3형제가 조선으로 찾아왔다가 귀국하지 않고, 전라도 나주와 김제에 정...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봉곡천에 용을 낚았다는 용구(龍口)라는 웅덩이가 있어 조룡(釣龍)이라 하였다. 조선 말 지례군 하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조룡·쌍괴(雙槐)·양지(陽地)·봉곡·조현이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조룡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조룡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조룡1리·조룡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대덕면...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김천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의 경우 지방에는 대체로 520여 개의 군현이 존재하였다. 그렇지만 고려 시대의 경우 수령이 파견된 주읍은 130여 개에 불과하고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군현은 속읍이라 하여 주읍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군현에 소속된 향·소·부곡·처·장이라고 부르는 부곡제 영역이 현재 확인된 것만도 900여 개 이상이었다. 고려 시대 주-속...
-
이순영[1926년생] 씨는 원터마을에서 태어나 16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러던 중 18세가 되던 해 만주 길림성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조선척식회사(朝鮮拓殖會社)를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만주 지역에 만주척식회사(滿洲拓殖會社)를 만들어 놓고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만주로 보내던 때로, 이...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철도주식회사의 출장소. 조선철도 김천출장소는 일제 강점기 김천에서 안동을 이은 경북선 공사를 위해 조선철도주식회사가 김천에 설치한 출장소이다. 일제 강점기 초 김천의 일본인 중심의 상공인들은 경부선 김천역을 중심으로 북쪽의 경상북도 및 충청북도 일대와 남쪽의 경상남도 삼천포에 이르는 철도 부설을 김천 상공계 발전의 핵심 사...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초월적인 존재 및 깨달은 존재, 혹은 신을 믿고 따르던 모든 신앙 행위. 종교(宗敎)라는 말 자체는 믿음 혹은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 가운데 최고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종교’라는 말은 한국 고전 문헌에서 그 용례를 찾아보아도 1800년대를 지나야 오늘날에 말하는 종교의 의미가 보인다. 그 전대의 신앙과 믿음에 관한 포괄적 용어로...
-
조선 성종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1429~1489] 선생을 불천위로 모시고 있는 삶의 터전이 바로 원터마을이다. 이숙기 선생을 시작으로 500여 년간 그 후손들이 살아오고 있는 원터마을의 중심에는 연안이씨 종가가 있으며, 그 종가에는 입향조 이숙기 선생의 18대 종손인 이철응[1945년생] 씨와 종부 한영숙[1946...
-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김천 지역에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가옥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활 행위이다. 이를 주거 생활이라고도 한다. 김천은 한반도 남부의 중앙에 위치하여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일찍이 마을이 성립하고 도시가 발전했다. 1991년 구성면 송죽리에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이 발견되었다....
-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고 전몽봉(全夢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죽산 전씨의 시조는 백제의 개국 공신인 전섭으로 고려의 항몽전쟁 때 공을 세운 28세(世) 전한(全僩)이 좌리공신 죽산군(竹山君)으로 봉군되면서 죽산[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을 세거지로 하여 후손들이 살면서 본관으로 삼았고 이로서 전한을 중시조로 하였다. 5세 전공취(全...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덕면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어서 중산(中山)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인 중산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고도 한다. 조선 말 지례군 하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중산·다화(多花)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중산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중산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중산이 중산1리, 다화가 중산2리로...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음력 9월 9일에 지내는 명절. 중양절(重陽節)은 음력 9월 9일을 이르는 말로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9는 원래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중양이라 한다. 또한 중양절은 3월 삼짇날 날아온 제비가 다시 강남(江南)으로 가는 날이기도 하다. 김천 지역의 중양절은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양절은 음력 3월 3일[삼짇날]...
-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국운이 다함을 한탄하며 아포로 낙향한 이사경(李思敬)이 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했다 하여 일대 마을의 지명을 인·의·예·지·신으로 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조선 시대에 개령군 아포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보신(甫新)·송변(松邊)·양산(梁山)·강호(江湖)가 통합되어 김천군 아포면 지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 말 지례군 하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지리(上智里)·하지리(下智里)가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지좌리(智佐里)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부항면 지좌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가 되었다. 마을 앞으로 부항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지좌리는 부항면 소재지에...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직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능여대사가 활동하여 고려 태조가 대찰로 창건하였다. 이곳에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자한 비가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 학조(學祖)가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을 때 중창하였다. 직지사 사적비는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눌의산에서 발원하여 김천시 모암동에서 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직지천은 황악산 하곡에 조성된 직지사(直指寺)에서 따 온 이름이다. 직지사는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도리사와 함께 세운 사찰로,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좌선에 의하여 사람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하라’는 뜻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눌의산에서 발원하여 김천시 모암동에서 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직지천은 황악산 하곡에 조성된 직지사(直指寺)에서 따 온 이름이다. 직지사는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도리사와 함께 세운 사찰로,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좌선에 의하여 사람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하라’는 뜻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
-
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은 조선 성종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1429~1489] 선생을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이숙기 선생은 연성부원군 이말정의 아들로, 구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용맹하며 큰 뜻을 품었던 이숙기 선생은 1453년(단종 1) 25세의 나이로 무과에 일등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인...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수(崔龍洙)는 1865년 10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74-1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천 황금동교회 장로였던 최용수는 1919년 3월 9일 황금동교회에서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를 경험하고 돌아온 같은 교회 조사(助師) 김충한과 대구 지역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김천으로 온 김수길 등과 만나 김천 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은 1862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639번지에서 한학자인 남애(南厓) 최창락(崔昌洛)[1832~186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익길(崔益吉) 또는 최학광(崔鶴光)으로도 불렸다. 18세에 아버지 최창락을 따라 성재(性齋) 허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족형인 양오(陽梧) 최봉길(崔鳳吉)[1853...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에 있는, 이곽을 기리기 위한 개항기의 사당. 이곽(李廓)[1590~1665]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태종의 아들 경녕군(敬寧君) 이비(李비(示+非))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이유인(李𥙿仁)이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1636년(인조 14) 이곽이 회답사(回答使)가 되어 청나라 심양(瀋陽)에 갔을 때, 심양에서는 국호를 청(淸...
-
전통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김천 지역의 충신을 기록한 자료로는 『품천지(品川誌)』,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등이 있다. 김천 지역의 충신을 유형별로 나누면 조선 개국에 항거하거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는 예배의 주요 대상이 되는 불교 조형물. 탑은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스투파(stupa), 또는 팔리어로 투파(thupa), 한역으로 번역하여 탑파(塔婆)라고도 한다.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탑은 재질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모전전탑, 청동탑, 금동탑 등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초기의 탑은 목탑이었지만 현재 남아 있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 뒤에 있는 정종대왕의 태를 안치한 산. 조선 정종이 1398년(정종 즉위) 등극한 후 고향인 함경도 함흥에 묻어 둔 태를 1399년(정종 1) 4월 5일 사두혈의 명당으로 이름난 직지사 뒷산 정상부로 옮겨 묻었는데 어태를 묻은 산이라 하여 ‘태봉’이라 하였다. 1399년 태봉에 태를 옮겨 안치한 후 직지사를 태실을 수호하는 수직사찰로 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태화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태화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태화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봉산면 태화리가 되었다. 태화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6.64㎢이며, 2015년 1...
-
1919년 경상북도 김천 출신을 비롯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사건.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림 세력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내세워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 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에 있는 수령 약 300년의 보호수. 파천리 느티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4m이다. 느티나무는 각 마을마다 정자나무나 서낭나무로 심어 보호하였으며, 오래된 나무는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 주는 상징으로 여겨 왔다. 어린잎은 봄에 떡을 만들 때 넣어 쪄서 먹고,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하여 건축·기구·조각·악기·선박 등의 재료로...
-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고 윤석빙(尹碩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의 시조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윤신달이다. 윤신달이 파평산(坡平山)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에 따라 본관을 파평이라 했다고 한다. 김천 지역의 파평윤씨는 7세(世) 윤돈신(尹焞信)의 후손이다. 15세 윤곤(尹坤)이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이조판서에 오...
-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고 신작(申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신숭겸을 시조로 한다. 태조 왕건은 신숭겸과 더불어 사냥을 나갔다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맞히자 크게 칭찬하며 사냥터 일대 땅 300결을 하사하고 평산[현 황해도 평산군]으로 본관을 삼게 했다. 15세(世) 신개(申槩)는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사명대사 공원 내에 있는 오층 목탑. 평화의 탑은 사명대사공원 내에 세워진 5층 목조탑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황악산의 생태 자원과 직지사의 역사 문화 자원을 연계한 문화생태체험형 관광지로 조성된 사명대사공원의 랜드마크이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하고 종전 후 조선 포로들을 구출하는 등 평화를 이끄는데 기여한 사명대사의 평화 정신을 선양하기...
-
『동아일보』 1931년 4월 25일자에는 최송설당과 김천의 만남을 “적막(寂寞)의 김천을 활기(活氣)의 김천으로, 초야(草野)의 김천을 이상(理想)의 김천으로”라고 하였다. 또 『동아일보』 1939년 8월 17일자에는 최송설당의 “유업(遺業)은 천추(千秋)에 그 빛을 남길 것이고, 공덕(功德)과 방명(芳名)은 학교[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의 운명과...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명수(韓明洙)는 1893년 1월 1일 김천시 황금동 18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로 있던 27세의 한명수는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같은 교회 조사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같은 교회 장로 최...
-
조선 초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백희(百熙), 호는 정포(靜浦). 증조할아버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평장사 한예(韓銳)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한진(韓瑨)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한방좌(韓邦佐)이다. 아들로 한권(韓卷)을 두었다. 한옹(韓雍)[1352~1425]은 개경에서 태어났으며, 아량과 재질이 탁월하였고 학문이...
-
연안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원터마을 뒤 응봉산 기슭에는 연안이씨 선조들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입향조인 연안이씨 이말정(李末丁)[연성부원군]의 묘가 아래쪽에 있고, 그 후손들의 묘가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역장(逆葬)의 형태이다. 이는 위에서 아래로, 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순서로 묘소를 안치시키는 일반적인 배열이...
-
이알평(李謁平) 을 시조로 하고 이연욱(李挻彧)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합천이씨의 시조는 신라 6촌(村)의 하나인 양산촌장 이알평으로 유리왕(儒理王) 때 양산부로 고치고 이씨(李氏)를 사성(賜姓)하였다. 중시조는 이알평의 39세(世) 이개(李開)가 강양군(江陽君)에 봉군되고 조선 태종 때 강양(江陽)이 합천으로 개칭되어 뒤에 본관을 합천...
-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하고 오태원(吳泰元)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해주오씨의 시조는 고려 중기 군기감(軍器監)을 역임한 오인유이다. 시조로부터 8세(世)까지는 고려 시대로 8세 오광정(吳光廷)이 공조전서를 지내 전서공파(典書公派)를 형성했다. 또한 8세 오사렴(吳士廉)이 사복시경(司僕寺卿)을 지내어 사복시각공파(司僕寺脚公派)를 이루었...
-
김숭선(金崇善)을 시조로 하고 김효신(金孝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해풍김씨는 고려 중기 예부상서를 지낸 김숭선을 시조로 한다. 시조 김숭선이 해풍부원군으로 봉군된 후 후손들이 해풍(海豊)을 본관으로 삼았다. 6세 김항(金沆)이 고려 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다. 7세 김효신이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지키기 위해 봉산면 신암...
-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등을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크게 정부 기관과 지방 자치 기관, 민간단체, 향토지 간행을 위한 임시 조직체 또는 개인이 간행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김천 지역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책은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인데, ‘김산군 편·지례현 편·개령현 편’에 김천 지역...
-
1972년 유주현이 황악산에서 유년 생활을 보낸 이문용 옹주를 주인공으로 지은 장편 역사 소설. 『황녀(皇女)』는 1972년 유주현(柳周鉉)[1921~1982]이 잡지 『사상계』에 처음 연재한 역사 소설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문용 옹주는 고종의 딸로서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황악산 기슭의 방앗골[坊下峠]에서 유년 생활을 보낸 주인공이다. 유주현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황악산을 배경으로 쓴 조선 후기 가사문학. 황악산구곡은 김천 황악산의 서남쪽 구성·지례·증산·대덕·조마·양천, 넓게는 감천 일대를 말하며 ‘황남구곡’이라고도 이른다. 이곳을 배경으로 이관빈(李寬彬)[1759~?]이 장편 가사(歌辭) 「황남별곡(黃南別曲)」, 윤희배(尹喜培)[1827~1900]가 「황산별곡(黃山別曲)」을 썼다. 「황남별곡」은 18세기 말에 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