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81 |
---|---|
한자 | 著存齋 |
이칭/별칭 | 보본재(報本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장등길 15[삼락리 17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석 |
건립 시기/일시 | 1948년![]() |
---|---|
이전 시기/일시 | 1998년 - 저존재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로 이건 |
개칭 시기/일시 | 1998년 - 저존재 보본재로 개칭 |
현 소재지 | 보본재[저존재]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장등길 15[삼락리 171]![]() |
원소재지 | 저존재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마을
![]() |
성격 | 재각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하양 허씨(河陽許氏) |
관리자 | 하양 허씨(河陽許氏)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에 있는 하양 허씨 집안의 재각.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에 있는 저존재는 하양 허씨 문중에서 재각 겸 학당으로 건립하였다. 금곡 송래희가 쓴 재호가 있었으며, 문중의 선비를 배출하였다.
저존재는 본래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마을 북쪽 산기슭에 있었으나 용담댐 건설로 수몰될 예정이 되자 1998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안천면 면소재지에서 용담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13호선을 이용하여 용담호를 끼고 가면 장등 마을이 나온다. 장등 마을의 왼쪽 용담댐 쪽에 있다.
1948년에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에 재각 겸 학당으로 건립하였다. 1951년에 중수하였으며, 한때는 용담군 일북면사무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용담댐 건설로 수몰 예정지가 되자 1998년 현 위치로 이건하고 명칭도 보본재(報本齋)로 변경하였다.
1992년 전북 대학교에서 용담댐 건설 수몰 예정지 문화재 지표 조사를 할 당시의 조사에 따르면 전면 4칸 측면 2칸의 함석 팔작지붕이었다. 본래는 기와지붕이었으나 1951년 중수하면서 함석으로 바꾸었다. 마루 기둥은 원형이며 방 기둥은 사각이었다. 우물마루이고, 반자는 삿갓반자, 천정은 연등 천정, 방문은 띠살문이며, 마루에는 줄판문이 있었다. 현재 보본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기와 팔작지붕이며, 문은 3칸이다.
하양 허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보전 상태가 좋은 편이다.
재각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핵가족화와 교통의 발달 등으로 동족 관념이 희박해지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으나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상 숭배 등 효(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또한 재각에서는 후학들에게 교육을 실시하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이곳도 하양 허씨의 학당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