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64
한자 松豊里芳花甕器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1481
시대 조선/조선,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현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송풍리 방화 옹기 요지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송풍리 방화 옹기 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1481 일대지도보기
성격 가마터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터.

[개설]

방화 마을 옹기 요지는 우리나라 모든 계층 어디서든 사용하던 옹기를 굽던 가마터로서 조선 시대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변천]

방화 마을 옹기 요지는 이미 독자적인 생활 경제 문화권을 형성하였던 조선 시대 용담현에서부터 금산까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소비처를 두고 가마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적인 유물로 불을 먹은 돌멩이가 보이는데 비탈 가마에서 수평을 이루기 위해 굄돌로 쓰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가마 조성 초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위치]

용담에서 금산을 가자면 왼쪽으로 방화 마을 바로 뒤 큰골이라 불리는 골짜기 모퉁이 구릉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면서 송풍리 방화 옹기 요지가 확인되었다.

[현황]

현재 인삼밭으로 경영되고 있다. 옹기 생산이 끝나고는 밭으로 일궈지면서 파괴되었을 것이며 큰골로 가는 농로를 내면서 파손의 정도가 더 심해졌다. 옹기의 작은 파편들은 밭에 그대로 있고 요벽을 이루었던 다소 큰 덩어리들과 사금파리들은 산과의 경계에 흩어져 있다. 가마터의 특성상 완전한 형태를 찾기는 어려우나 다양한 파편들의 존재는 이 요지의 왕성한 생산 활동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요벽의 두께를 보면 매우 활성화되었던 가마로 보인다. 굄돌로 쓰였을 불 먹은 돌멩이가 일의 다양성을 보인다. 현재에도 방화 마을은 여타 마을에 비해 큰 규모를 통해 규모 있는 옹기 마을이었을 것을 짐작해 본다. 마을에서 산촌 가꾸기를 하면서 옹기 요지를 문화 요소로 활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옹기 요지의 문화 유적 재생 잠재력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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