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10
한자 三樂里顔子洞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조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2월 26일 - 삼락리 안자동 유적 국립 전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5월 25일 - 삼락리 안자동 유적 국립 전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성격 유적
양식 고인돌
크기(높이,길이,둘레) 길이 160㎝, 너비 58㎝, 깊이 70㎝[2호 돌널]|길이 126㎝, 너비 28㎝, 깊이 24㎝[4호 돌덧널]|길이 188㎝, 너비 82㎝, 깊이 60㎝[6호 돌널]|길이 188㎝, 너비 72㎝, 깊이 83㎝[9호 돌널]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 유적.

[개설]

삼락리 안자동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1996년 용담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 1차 발굴 조사 때 확인되어 고인돌 11기가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안자천을 따라 분포하고 있으며, 단독 무덤 2기와 연접 무덤 9기로 구분된다.

[위치]

삼락리 안자동 유적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마을에 있다. 441.5m의 쇄마리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 말단부의 남사면에 해당하며, 안자천이 U자형으로 굽이쳐 북서쪽 승금 마을로 흘러가는 곳이다.

[형태]

안자동 유적에서는 11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2기는 덮개돌이 남아 있었으나 9기는 덮개돌이 이동 또는 유실된 상태로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묘역부만 확인되었다. 유적은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유적이 안자천으로 흘러드는 2개의 지류가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하천 범람의 피해를 입었고, 지속적으로 밭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9기의 고인돌이 구릉의 가장 끝 부분에 2개의 열을 지어 나타나는 형태와 구릉의 윗부분에 위치하여 독립적인 형태가 있다.

단독 무덤은 6호와 9호 2기가 확인되었다. 가장 높은 지점의 경사면에 자리하며 매장 주체부가 지하식이다. 6호는 후대에 교란과 유실이 심하게 진행되었다. 묘역의 평면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720㎝, 너비 650㎝이다. 매장 주체부는 반지하식 돌덧널로 묘역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188㎝, 너비 82㎝, 깊이 60㎝ 정도 된다. 돌널 내부에서는 붉은 간토기 조각과 붉은 간토기 평저호 1개체분이 파쇄된 채 출토되었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파쇄 후 매납한 것으로 보인다. 9호는 덮개돌이 없고 일부 파괴된 묘역과 매장 주체부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묘역은 길이 600㎝ 이내의 방형으로 경계석을 정확하게 돌렸다. 매장 주체부는 지하식 돌덧널으로 묘역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돌덧널의 규모는 길이 188㎝, 너비 72㎝, 깊이 83㎝ 가량 된다. 유물은 매장 주체부 바닥에서 붉은 간토기 1점과 돌 화살촉 8점, 간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단독 무덤 아래쪽에 연접 무덤이 2열로 축조되었는데 모두 5기가 해당된다. 가장 아래 부분에 1호·2호·3호·4호가 1열로 축조되고 다시 그 위쪽으로 연접하여 5호가 축조되어 2열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5호는 하나의 묘역 안에 3개의 고인돌이 연접되어 있다. 연접 무덤의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덧널, 반지하식 돌널, 반지하식 돌덧널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5호 고인돌의 전체적인 크기는 길이 1,430㎝, 너비 640㎝이고 동서로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5호 고인돌의 3기 모두 덮개돌이 없으며 묘역의 중앙 또는 서쪽에 치우쳐 자리하고 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편·간돌검 조각·삭도형 석기 등이 있다.

가장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1호에서 4호 고인돌은 전체적으로 파괴가 심하게 진행되었다. 덮개돌은 2호와 3호에서 확인되었다. 3기의 고인돌이 연접되어 하나의 군을 이루는 5호와는 달리 각각의 단독 묘역을 가진 고인돌이 같은 선상에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1호 고인돌은 2호와 연접된 것으로 보이나 파괴가 심해 두 유구의 선후 관계는 알 수 없다. 1호는 방형의 묘역을 가지며 규모는 길이 490㎝, 너비 450㎝이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덧널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확인되었다.

2호는 묘역이 거의 방형에 가까운 형태로 길이 582㎝, 너비 576㎝가량 된다. 매장 주체부는 반지하식 돌널로 묘역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규모는 길이 160㎝, 너비 58㎝, 깊이 70㎝이다.

3호는 2호와 1m가량 동쪽으로 떨어져 확인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파괴가 심하다. 덮개돌은 후대에 비석의 받침돌로 사용되면서 일부 이동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매장 주체부는 지상식 돌덧널로 파괴되었다. 유물은 붉은 간토기와 돌화살촉이 출토되었다.

4호도 전체적으로 교란과 파괴가 심하다. 덮개돌은 없고 일정 공간의 묘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매장 주체부만 남아 있다. 매장 주체부는 반지하식 돌덧널로 1단만 남아있다. 규모는 길이 126㎝, 너비 28㎝, 깊이 24㎝이고 간돌검 1점과 관옥 1점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축조 순서는 2기의 단독 무덤이 먼저 축조된 후 연접 무덤이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삼락리 풍암 유적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준다. 출토 유물은 송국리형 문화 요소가 확인되고 있어 송국리형 문화 단계에 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황]

삼락리 안자동 유적은 발굴 조사 후 용담댐 완공으로 인하여 수몰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락리 안자동 유적은 한 지역 내에 단독 무덤의 고인돌과 연접 무덤의 고인돌이 각 위치를 달리하며 자리하고 있으며, 단독 무덤이 보다 위쪽에 자리하여 축조 집단 내에서 계획적으로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주변 지역에서 확인된 삼락리 풍암 유적·삼락리 구곡 유적·삼락리 수좌동 유적과 비슷한 양상으로 삼락리 지역의 고인돌떼가 가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삼락리 안자동 유적금강 상류 지역의 청동기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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