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에서 굴욕적으로 항복을 하자 그 이듬해 1637년 서른여섯 되던 해에 척화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조부 김충립(金忠立) 을 따라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버리고 진안군 주천면 에 들어왔다. 이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긍구당유고(肯構堂遺稿)』 와 한시 114수를 남겼다. 가재 전동흘(全東屹) [1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