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진안 출신 효자. 효행(孝行)으로 1870년(고종 7)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고 1873년(고종 10)에 정려(旌閭)가 내리었다. 정려(旌閭)는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에 있다.
... 『진안지』 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년 동안이나 생명을 연장시켰으므로 효자로 정려를 받았다.'라고 한다. 묘는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 에 있다. 1892년 양원하 · 양명수 · 의성 정씨 의 석정(石旌)이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 어귀에 건립되었다. 석조 정려의 비표에는 우측으로부터 ‘효자 학생 양원하 지려(孝子學生梁源河之閭)', ‘효자 학생 양종윤 지려(孝子學生梁鍾潤之閭)', ‘열...
...修義副慰)의 품계와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각은 이후 일실되었고, 현재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원노촌 에 남아 있는 효자각은 1801년(순조 1)에 세워진 것이다. 중수 ...다고 한다. 충효사 에 배향되었으며 신기선 이 유적비의 비명을 지었다.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원노촌 마을 뒤 산기슭에 있는 거창 신씨 사당인 송산재 에도 배향되고...
...향약을 시행하고 공민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등 진안 지방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산묘 을 세워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에 김구(金九) , 이시영(李始榮) 등이 글을 보내 칭송하기도 하였다. 전국의 유림들이 전인권 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금을 모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가전 마을 덕태산 밑에 정려를 세웠다.
...은 장수(長水) . 자는 대규(大圭) . 방촌희(哤村喜) 의 후손이며 황인수(黃仁洙) 의 아들이다. 황요(黃橈) [1843~1877]는 진안군 백운면 봉서리 에서 태어났다. 『장수 황씨 족보 을해보(長水黃氏族譜乙亥譜)』 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학문도 깊어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