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096
한자 郭致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행원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8년대 초 - 곽치삼 호남 의병단에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09년 5월 - 곽치삼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9월 21일 - 곽치삼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0월 8일 - 곽치삼 전주 재판부에서 태 100도형을 받고 석방
출생지 곽치삼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하행원리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곽치삼(郭致三)[?~?]은 진안군 동향면 하행원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에 가담하려 했으며, 1908년대 초 동향(同鄕)의 김경선, 김준대, 박내서, 박성숙, 박창선, 성문오, 성재홍, 성중문, 성태언, 신치수[36세], 심우상, 안원필, 안일원, 여성오, 조경화, 하준태, 한청여 등과 함께 문태수 의병장이 지휘하는 ‘호남 의병단(湖南義兵團)’에 가입하였다. 박춘실(朴春實) 선봉 부대에 배속되어, 덕유산을 거점으로 각지에서 유격 전투에 참가하며 전공을 세웠다.

1909년 5월 장수군 계북면 문성(文城) 동북쪽의 산중에서 함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그때 박춘실 선봉장이 부상과 함께 체포당하고 의병 13명이 전사하는 등 큰 패배를 당하였으나 다시 호남의병단에 귀속되어 유격활동을 계속하였다. 동년 9월 한가위를 맞이하여 일시 해산한 뒤 귀가하였는데, 장수 주재소의 순사에게 탐지되어 9월 21일 의병 20명과 함께 체포당하였다. 1909년 10월 8일 전주 재판부에서 태(笞) 100도를 맞고 풀려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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