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11
한자 白華里下梨樂安金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642년 - 백화리 하리 낙안 김씨 집성촌 형성
집성촌 백화리 하리 낙안 김씨 집성촌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지도보기
성격 동족 마을
가구수 7가구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 있는 낙안 김씨 집성촌.

[명칭 유래]

백화리안천면에 소속된 법정리로 본래 용담군 이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화리, 이현리와 무주군 부남면 교동 일부를 병합하여 백화리라 하여 진안군 안천면에 편입되었다. 백화리라는 말의 유래는 마을 북쪽에 위치한 지선봉(持仙峯) 연못가에 배나무가 울창하여 ‘배실’이라 불리워 배꽃이 하얗게 피기 때문에 백화리(白華里)라 불렀다.

하리 마을은 배나무가 많아 배실이라 불렀다. 하배실은 상배실과 중배실의 아래쪽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하리낙안 김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 낙안 김씨 중에서 진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김빈길의 7세손인 김여광(金麗光)이다. 김여광은 1642년(인조 20)에 옥천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살았다.

이후에 양혜공 김빈길(金贇吉)의 후손인 돈령 도정 김담(金譚)이 1704년(숙종 30)에 옥천에서, 안양공 혜(惠)의 14대손인 김황(金璜)이 1774년(영조 50)에 옥천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낙안 김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 1,076가구에 3,474명, 전라북도 193가구에 614명, 진안군에는 37가구에 111명이 거주하고 있다.

[자연 환경]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하리 마을은 마을 북쪽에는 안천면용담면, 무주군 부남면의 경계를 이루를 지장산이 있다. 또한 남쪽으로는 용담호로 흘러가는 금강 상류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 임수의 입지를 갖춘 마을이다.

[현황]

1945년 8·15 해방 직전만 해도 다른 성씨는 단 두집 뿐이었고 모두 낙안 김씨였다. 1965년에도 총 67가구 가운데 62가구가 낙안 김씨였다고 한다. 2011년 기준으로 하리 마을에는 23가구가 거주하며, 이 중 7가구가 낙안 김씨이다.

하리 마을에는 낙안 김씨의 집성촌이 형성됨에 따라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인 학륜당, 낙안 김씨의 사당인 화천사와 죽산 안씨 효열비, 낙안 김씨의 재각인 경모재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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