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근영은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여 「독립선언문」을 읽고 3월 5일 남대문역(서울역)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날 만세 시위에서 그는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남대문을 지나 조선은행 옆까지 갔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는 조선독립선...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반란인. 1623년(인조 원년)에 인조반정으로 우부승지에서 파직되어 제천에 유배되어 있던 유효립(柳孝立)은 사람들을 모아 광해군을 상왕(上王)으로 삼고,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도모하였다. 조헌립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출신으로 이 역모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거사 하루 전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세기 초반 조선의 조정에는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통론(嫡統論)을 내세워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일전에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던 유영경 일파가 몰락하고 대북정권(大北政權)이 들어섰다.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선조의 첫째 왕자 임해군을 제거하...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공신. 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는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제수 받았던 허계(許契)이다. 1628년(인조 6) 유효립(柳孝立)은 전(前) 세마(洗馬) 허유(許유)·전(前) 좌랑(佐郞) 정심(鄭沁)·도감초관(都監哨官) 윤계륜(尹繼倫) 등과 내통하여 자기 아들과 추종자를 도성(都城)으로 잠입시켜 광해군을 상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