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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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맹정승 이야기. 1981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세종 때의 명재상 맹사성은 지극히 청렴하고 고결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맹정승은 고향인 온양에서 한양까지 종자도 거느리지 않고 늘 검은소를 타고 다녔다. 맹정승은 한양으로 갈 때면 성환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진위현을 거쳐 용인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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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자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문화류씨의 본향은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이며, 시조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 내지 12세손 대에서 14파로 크게 나뉘는데, 류량을 파조로 하는 충경공파(忠景公派), 류만수(柳曼殊)를 파조로 하는 좌상공파(左相公派), 류관(柳寬)을 파조로 하는 하정공파(夏亭公派), 류원현(柳元顯)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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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당나라 두보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시집.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는 흔히 두시언해라고도 불린다. 분류란 두보의 시를 분류하였다는 뜻이고, 두는 두보의 이름이며, 공부란 두보의 관직 이름, 시란 두시의 시를 말한다. 언해란 그 당시 언문이라고 불렸던 훈민정음으로 해체한 것을 뜻한다. 원(元)나라 때 편찬된 『찬주분류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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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주를 시조로 하고 황윤충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국 황씨의 원시조는 중국 후한(後漢)의 유신(儒臣)이었다는 황락(黃洛)으로 전해온다. 그는 서기 28년(건무 4년)에 후일 평해구씨의 시조가 되는 구대림(丘大林)과 함께 교지국(交趾國)에 사신으로 가던 길에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착해 그곳에 자리잡고 살았는데, 이것이 황씨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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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의 묘지석. 묘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묘의 위치와 좌향 등을 적어서 묘에 함께 묻은 판석(板石)을 말한다. 지석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조상, 관직, 평생의 행적, 가족관계 등을 적어 후세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서거정 묘지석은 서울시 강동구 방이동 묘역이 도시계획으로 이전하면서 1975년 6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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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한글로 편역하여 간행한 책.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석가보(釋迦譜)』, 『법화경(法華經)』,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경(藥師經)』 등에서 석가의 일대기를 뽑아 한글로 엮은 책이다. 간행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서(釋譜詳節序)」가 세종 29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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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통지(通之). 증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청성백(靑城伯) 정안공(定安公) 심덕부(沈德符)이며, 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안효공(安孝公) 심온(沈溫)이다.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생으로, 세종의 처남이다. 문종과 세조의 외숙부이며, 아들은 심정원(沈貞源)이다 14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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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시호는 양혜(良惠). 증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심용(沈龍)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청성백(靑城伯) 정안공(定安公) 심덕부(沈德符)이며, 아버지는 부윤(府尹) 심징(沈澄)이다. 아들은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심선(沈璿)이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의 조카이며,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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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권근의 시문집.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은 조선 전기 태종 대의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시문집으로, 1674년(현종 15)에 중간한 후쇄본이다. 19권 4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이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27.5㎝이다. 『양촌선생집』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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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석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이문한(李文漢)의 선계는 사로육촌 중 알천양산촌의 촌장인 알평(謁平)이라고 전한다. 이문한은 고려 초에 평장사를 지냈으며 그의 7세손 이극인(李克仁)이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익양군(益陽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본관은 이극인의 봉지인 익양으로 하였는데 뒤에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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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 있는 대한불교 열반종의 총본산. 사단법인 대한불교 열반종은 서기 623년 고구려의 고승 보덕대사에 의해 창종된 열반종의 맥을 잇는 교종의 하나이다. 삼국시대 5대 교종 중의 하나인 열반종은 소의경전을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으로 하고 교육을 통해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도 열반종의 보덕대사에게 수학하였다.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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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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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이재가 지은 임진왜란 의병장 유복립의 정려기.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에게 정려의 은전이 내려지자, 후손 유심(柳深)의 간청으로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정려기(旌閭記)이다. 글씨는 이조참판 신만(申晩)이 썼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유복립 정려각 안에 현판으로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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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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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이맹석은 조선 세종 대에 경기도 용인현에 살았다. 할아버지 이도을(李都乙)이 서울에서 죽었는데, 이맹석의 아버지가 종기가 심해 거의 죽게 되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다. 그러자 이맹석이 아버지를 대신해 예의에 맞게 염(殮)하고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무덤 앞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 후 부모가 사망하자 이맹석은 몸소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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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판서를 지낸 이광시(李光時)이고, 할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사위(李士渭)이고, 어머니는 지군사(知郡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윤보(尹寶)의 딸이었고, 사별한 뒤 판관(判官) 권경(權敬)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아들은 증이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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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이선(理善), 호는 쌍곡(雙谷). 조부는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아버지는 진사 출신 이계인(李啓仁)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6세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1590년(선조 23) 생원 급제 후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시작하여 병조좌랑·형조좌랑·예조좌랑과 삼화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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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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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이종겸은 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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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이종무의 묘. 이종무(李從茂)[1360~1425]는 14세 때 을진(乙珍) 장군이던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고, 1397년(태조 6)에 옹진만호(甕津萬戶)가 되어 서해안에서 왜구를 물리친 후 상장군에 올랐다. 1400년(정종 2년)에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 통원군(通院君)이 되었고,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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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증은 세종의 둘째 서자로, 계양군에 봉해졌다. 세종이 끔찍이 사랑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공부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와 관련해서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안평대군을 제거하였으며,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현지(顯之). 아버지는 세종이고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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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징은 태조의 조카이며, 고려 때부터 벼슬에 나아갔지만 주로 활동한 시기는 태종과 세종대이다. 본래 풍질이 있어 이로 인해 죽었다. 아버지가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을 도와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고, 이징도 태종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일생에 세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적인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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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 증조할아버지는 이승충(李升忠)이고, 할아버지는 이봉손(李奉孫)이며, 아버지는 사간 이효독(李孝篤), 어머니는 최명근(崔命根)의 딸이다. 부인은 이규(李逵)의 딸이다. 이홍간(李弘幹)은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권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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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주민수 또는 집단. 용인시는 수도권 남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1960년대까지는 인구 10만 이하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1960년 중반부터 시작한 이촌향도로 인구가 일정 기간 감소하였으나, 영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에버랜드와 양지파인리조트 등과 같은 위락시설이 입지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10만 명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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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용인은 경기도의 남부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로, 극동은 백암면 고안리, 극서는 수지구 고기동, 극남은 남사면 원암리, 극북은 수지구 고기동이다. 용인은 서울에서 동남 쪽으로 30㎞ 떨어진 도시로 행정구역상 동쪽은 이천시와, 서쪽은 수원·의왕·화성시와 접하고 남쪽은 안성시, 북쪽은 성남 및 광주시와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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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간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장수(長水)는 전라북도에 있는 지명이다. 장수이씨는 이알평(李謁平)의 52세손이며, 고려 충선왕 때 정승으로 장천부원군에 봉해진 이임간(李林幹)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손자 이을진(李乙珍)이 공민왕 때 정승을 지냈고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助功臣)에 책록되어 장천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장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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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언념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에 있는 지명이다.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이도는 본래 공주에 세거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통합삼한개국익찬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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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장수 노인. 1435년(세종 17)에 세종은 각 도의 감사에게 나이가 100세에 이른 노인들에게 쌀 10석과 술, 고기를 주라고 교지를 내렸다. 이로부터 13년이 지난 1448년(세종 30)에는 왕이 법에 따라 100세 이른 노인들을 위문하고 구제하는지 확인하여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정부개(鄭夫介)는 용인 지역에 살았던 최장수 노인이었다. 당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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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해 만들어진 용인현은 수원진영(水原鎭營)에 소속되었으며 남양부(南陽府)에서 관할하였다. 수원진에 부속된 시기에는 16개 면을 종5품의 현령이 다스렸으며,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1872년(고종 9)에 작성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로 보아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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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연(趙捐)[1374~1429]은 벼슬에 나간 뒤 파천된 일이 없었고 4대조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재화를 탐하지 않고 국정에 힘썼다. 문신이면서도 야인 정벌에 무공을 떨치기도 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여정(汝靜), 초명은 조경(趙卿). 아버지는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이고, 어머니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친인 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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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연의 사당. 조연(趙涓)[1374~1429]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1386년(고려 우왕 1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392년(고려 공양왕 4)에 봉상대부 공조정랑에 올랐다. 조선 태조 즉위 후 별운검이 되고, 1409년(조선 태종 9)에 길주도안무찰리사 겸 길주목사가 되어 변방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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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의(安令儀)와 안원형(安元衡)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죽산안씨는 구죽산과 신죽산 두 파가 있는데, 구죽산의 시조는 고려의 상서좌복야 안영의(安令儀)이고, 신죽산의 시조는 안향의 증손인 시중(侍中) 안원형(安元衡)이다. 구죽산에서는 고려시대에 공민왕의 국구로서 우문관대제학을 지낸 안극인(安克仁), 그의 아들로 도순문사(都巡問使)를 지낸 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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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을 시조로 하고 이문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청해이씨의 시조는 조선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퉁두란으로서 아버지에 이어 천호가 되었다가 원나라 말기 고려 공민왕 때 많은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북청에 거주하면서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어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올라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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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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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용(崔士庸)[1392~1453]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났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당시의 석학인 완역재(玩易齋) 강대민(姜戴敏)과 문절(文節) 김담(金淡)과 교유하였다. 관직은 내외직을 고루 역임하면서 백성을 아끼고 바르게 다스려 선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관중. 증조부는 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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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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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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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엽을 시조로 하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고려 인종 때 송나라에서 건너온 성씨로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이 시조가 되었다. 본관은 개성·강화·파평 등이 문헌에 있으나 오늘날에는 추계추씨와 전주추씨 두 본으로 되어 있다. 추엽의 아들인 추황(秋簧)이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대제학을 지냈고 『명심보감』의 편자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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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을 관적으로 하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15세기에 존재한 전국의 성씨 종류와 본관의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용구현 토성으로 진(秦)·이(李)·송(宋)·용(龍)·엄(嚴) 등 5개와 처인현 토성 이(李)·서(徐)·지(池)·섭(葉)·김(金)·강(康) 등 6개를 나열하고 있다. 또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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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효자. 한신은 세종대에 양지현(陽智縣)에 살면서 사랑과 공경을 다해 부모를 섬겨 효자로 이름이 났다. 아버지가 죽자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면서 하루 세 번 음식 공양하기를 삼 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지극한 효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1431년(세종 13)에 예조에서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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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관학 기관. 각 지방에 관학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3경(京) 12목(牧)을 비롯한 군현에 박사와 교수를 파견하여 생도를 교육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향학(鄕學)의 시초이다. 용인 지역에는 조선 전기인 1400년(정종 2)에 용인향교가 세워졌다. 이는 태조 이성계의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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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수효(秀孝)·계효(季孝)[세종실록에는 계효로 되어 있다.], 호는 나부(懦夫)·신부(侁夫). 아버지는 세종조의 명상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이며, 형은 판서(判書) 황치신(黃致身)이다. 황수신(黃守身)[1407~1467]은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하였다가, 학문이 부진하다고 시관(試官)에게 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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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최유경의 사당.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효성과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아 태종 때에는 청백리로 녹선되고, 세종 때에는 효자정문이 내려졌다. 이곳에 소재한 사우(祠宇)를 효렴사(孝廉祠)라 한 것은 그의 청렴한 기상과 효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도 393호선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