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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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정암(貞庵)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손자이고, 문충공(文忠公) 진후(鎭厚)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덕로(李德老)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권상하(權尙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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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이다. 증조부는 민여건(閔汝健), 할아버지는 민기(閔機), 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이고 아들은 민진장(閔鎭長), 형제는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거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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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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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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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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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이다. 할아버지는 교리 윤섬(尹暹), 아버지는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다. 외조부는 황치경(黃致敬)이고, 부인은 박정원(朴鼎元)의 딸이다. 그의 친동생 윤집은 청나라 와의 화의를 강경하게 반대한 3학사의 한 사람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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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지신(李之信), 아버지는 증승지(贈承旨) 이력이다. 광해군 때 스승 조수륜(趙守倫)이 화를 당하여 죽자 스승의 친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는데 그가 예에 따라 습렴을 하였다. 또 인목대비의 폐비론이 일자 그에 대한 잘못을 직언하여 죄를 받았다. 이때 초야에 있으면서 당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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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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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부부인. 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조귀중(趙貴中)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장령 한진(韓縝)의 딸이다. 남편은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有重)이다. 1676년에 딸이 숙종의 계비가 되자 외명부(外命婦) 정1품 부부인(府夫人)이 되었다.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현왕후가 폐비되자 삭탈관직당했으나 1694년 갑술옥사(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