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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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7년(영조3) 청주에서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 때 문성천은 양지현(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던 가의대부(嘉義大夫) 주헌(朱櫶)이 의병을 모집하자 그를 도와 좌찬현(佐贊峴)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적을 막고 수백 여 명을 죽였다. 이 일이 임금께 보고되었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다가, 1785년 경기관찰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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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聲甫), 호는 오헌(梧軒)이다. 증조부는 민광훈(閔光勳), 할아버지는 민시중(閔蓍重), 아버지는 이조판서 민진주(閔鎭周)이다. 외조부는 정상징(鄭尙徵), 부인은 조태동(趙泰東)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715년에는 주부·정랑에 올랐다.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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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이인좌의 난 연루자. 지리학교수(地理學敎授)를 지내던 안호(安鎬)의 동생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경기도 용인 주변 지역에서도 군사를 모아 변란을 도모하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양성현 송전리(지금의 용인시 이동읍) 에 살던 장흠이 주도했다. 안박은 장흠에 포섭되어 변란 도모에 동원할 군사를 규합하던 중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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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선비. 용인 직곡(直谷) 출신으로 아버지는 진사(進士) 안헌국(安憲國)이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 당시 양성(陽城)의 권서린(權瑞麟), 용인 직곡의 안지원(安趾遠), 과천(果川) 상포(霜浦)의 이인좌(李麟佐) 형제 등과 함께 이사성(李思晟)의 집에 모여 역모를 꾀하였다. 이들은 신임사화를 기화로 반드시 노론이 소론을 제거하려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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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1728년(영조 4) 당시 용인·양성(陽城) 두 지역을 중심으로 양성의 권서린(權瑞麟), 용인 직곡의 안엽(安熀)·안정 형제와 안지원(安趾遠), 과천(果川) 상포(霜浦)의 이인좌(李麟佐) 형제 등은 이사성(李思晟)의 집에 모여서 무신의 난을 일으켜 역모를 꾀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신임사화를 기화로 ‘임금이 소론(少論)을 쓰기 때문에 노론(老論)이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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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상(士常), 호는 모암(慕菴)·영모당(永慕堂)이다. 고조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 증조부는 오달천(吳達天)이고,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성제(呂聖濟)이고, 부인은 최기창(崔起昌)의 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709년 교리를 거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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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의 초상화와 양무공신 교서. ‘오명항영정병함부양무공신교서(吳命恒影幀幷函附揚武功臣敎書)’는 오명항 초상화 한 점과 일등공신으로 책록하는 교서 한 부 그리고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로 만든 함 등 총 세 점의 유물을 말한다. 오명항 초상화는 1979년 9월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오명항 양무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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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오명항의 정문. 오명항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영모암(永慕菴)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으나 문무겸전의 지략이 뛰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 여씨를 지성으로 모셨다. 모친상을 당하자 마치 어린아이처럼 애통해 하고 3년 동안 묘소를 보살피면서 죽 이외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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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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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통덕랑(通德郞) 한홍제(韓弘濟)와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반란군이 좌찬고개를 지나지 못하게 막아 공을 세웠다. 유상한(劉相漢)은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당시에는 포상되지 않았다가 1788년(정조 12) 정조가 당시 반란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포상 받지 못한 공신들을 다시 찾을 때 알려져 그 후손이 상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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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 자는 성숙(成叔). 증조부는 윤곡(尹曲), 외조부는 조유형(趙惟珩), 조부는 윤형태(尹衡泰)이며, 아버지는 윤상(尹床), 부인은 우세중(禹世重)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10월 임금은 윤취은을 포함한 관학 유생들에게 친히 강경(講經)을 시험한 후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명하였다. 1705년(숙종 31) 윤취은은 식년문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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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백첨(伯瞻), 호는 석음와(惜陰窩). 호는 배우는 데 힘쓰고 시간을 아껴 매사에 부지런히 하라는 뜻으로 송시열이 지어주었다 한다. 고조부는 증직제학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증조부는 증집의 정선군수 이영인(李榮仁), 조부는 증좌승지 이사익(李士益),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이후망(李堠望)이다. 송시열과 동향으로 송시열의 자손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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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시호는 충정(忠貞).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재종손이며,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의 조카이다. 아들인 이경호·이중호 형제를 비롯하여 후손 6명이 대과에 급제하였고, 손자 이재협은 1789년(정조 13)에 영의정을 지냈다. 이보혁이 1728년(영조 4) 성주목사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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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이용신은 1724년(경종 4) 7월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현감으로 부임하여 1728년(영조 4) 4월까지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에 아이들의 성과 이름을 초록(抄錄)해 두었다가 책(冊)을 만들었다. 그들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군액(軍額)에 충정(充定)하여 군영(軍營)에는 수효가 모자람이 없게 하고, 고을에서 백골(白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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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증조부는 찬성공 이후연(李後淵), 조부는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으로 군수 정창징(鄭昌徵)의 딸이고, 홍익한(洪翼漢)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서울 북부 진장방(鎭長坊) 소격동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21세 때 도승지로 있었던 아버지 이세백이 기사환국(己巳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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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반란인. 영조 즉위 후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정변이 일어났다.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었으므로 이인좌의 난, 또는 일어난 해의 간지를 따서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한다. 당시 송전(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 사람이었던 장흠(張欽)[?~1728]은 이들과 함께 반란에 가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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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정찬술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경기도 용인시 왕산리 왕곡마을에서 생활하였다. 83세까지 장수하여 회혼례를 올렸으며, 증손자가 정몽주(鄭夢周)의 사손으로 정해짐으로써 정몽주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술보(述甫). 정몽주(鄭夢周)의 11대손으로 아버지는 수군방어사(水軍防禦使) 정도징(鄭道徵)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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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 때 의병을 모집하여, 문성천(文星天)과 함께 죽산현과 양지현 부근의 좌찬현(左贊峴)에서 수백 명의 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웠다.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원종록에 들었으며, 사후인 1788년(정조 12)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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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최규서(崔奎瑞)[1650~1735]는 경기도 광주시 출신으로 숙종대에 관직에 나아간 이후 경종대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당쟁이 격화된 당시 소론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영조 즉위 후 낙향한 80세의 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대한 대책을 올려 공신에 녹훈되고, 영조의 묘정에 배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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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와 맹리에 걸쳐 있는 산. 마을에서는 태미산·퇴비산·까진봉 등으로 부르며, 태미나 퇴비 등의 명칭은 8부 능선에 테뫼식 토축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테뫼산이 태봉산으로 변음된 것이다. 까진봉은 산사면을 깎아 내린 다음 안쪽의 흙을 파서 깎여 나간 경사면에 판축한 것이 봉우리 8부 능선을 한바퀴 돌았으므로 그 형태를 보고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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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후기의 고문서. 해주오씨가 고문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내린 교첩 12점과 교지 55점, 오달천(吳達天)에게 내린 교지 13점, 오도종(吳道宗)에게 내린 교지 14점, 오도일(吳道一)에게 내린 교지 81점, 오수현(吳遂顯)에게 내린 교지 17점, 오명유(吳命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