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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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건축, 상업과 공업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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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재상들의 간찰첩. 『명재수간(名宰手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만년에 10여 년간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이름 있는 재상들이 보낸 간찰들을 묶은 간찰첩(簡札帖)이다. 간찰들은 1640년(인조 18)부터 1659년(효종 10) 사이에 쓰여진 것들로 짐작되며, 모두 18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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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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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되어 있는, 조상의 신주, 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지역에 따라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사당(祠堂) 등으로 불리는 사우(祠宇)는, 조상의 신주와 영정을 모셔 두고 연 수 차례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이다. 보통 반가의 사우에서는 부모와 조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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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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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오달천(吳達天)[1598~1648]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한성(漢城) 숭교방(崇敎坊)[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이다. 1620년(광해군 12)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벼슬길에 나아가 사산현역(四山縣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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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중(爾重).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며, 오달천(吳達天)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함평이씨이다. 47세의 나이로 죽어 현달하지 못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선영에 있다. 숭정대부 좌찬성겸 지의금부사 세자이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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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도사(都事) 조간(趙幹)의 딸이고, 아들은 오수채(吳遂采)이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성강(星江) 조견소(趙見素)에게 글을 배웠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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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상(士常), 호는 모암(慕菴)·영모당(永慕堂)이다. 고조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 증조부는 오달천(吳達天)이고,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성제(呂聖濟)이고, 부인은 최기창(崔起昌)의 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709년 교리를 거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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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수(士受), 호는 체천(棣泉)이다. 증조부는 오윤겸(吳允謙), 조부는 오달천(吳達天),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오도일(吳道一)이다. 외조부는 정엄(鄭淹), 부인은 윤행교(尹行敎)의 딸이다. 아들은 오명보(吳命普)이다. 음보로 주부(主簿)가 되었고, 영조 11년(1735)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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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정지(貞之). 석성현감을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매우 번창하였는데, 사후 2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거의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손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오희문의 아들 오윤겸(吳允謙)[1559~1636]도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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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묘. 오윤겸(吳允謙)[1559~1636]의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오윤겸의 본관은 해주이며, 보물 제1096호인 『쇄미록(瑣尾錄)』을 남긴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다. 오윤겸은 어머니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태몽을 꾼 뒤 잉태하여 초명을 성룡(星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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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군신(君信), 호는 추은(楸隱). 좌승지를 지낸 오경우(吳景愚)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오경순(吳景醇)의 아들로 경우에게 입양된 오세공(五世恭)이다. 어머니는 삭녕최씨의 딸이다. 첫 부인은 김황(金晃)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이민신(李敏信)의 딸이다. 7세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성인과 같았다고 한다. 광해군 때 문음으로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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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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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비연(斐然). 석성현감(石城縣縣監) 오옥정(吳玉貞)의 손자, 장성현감 오경민(吳景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남인(南寅)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로 이석형(李石亨)의 증손녀이고, 외할아버지는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이다. 외가인 영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으나 집은 서울 관동(館洞)[지금의 명륜동]에 있었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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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오희문의 일기집. 『쇄미록(瑣尾録)』은 조선 중기에 선공감 감역을 지낸 비연(斐然) 오희문(吳希文)[1539~1613]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으로 피난하며 10여 년간 쓴 일기이다. 1991년 9월 30일에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오희문이 난리 중에도 이와 같은 글을 남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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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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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재실. 1636년(인조 14)에 오윤겸이 별세하자 모현촌에서 장사를 지내고 묘소 아래에 재실과 사당을 지었다. 재실은 후손들이 조상의 묘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이러한 용도의 건물을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라고 하는데,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飮福)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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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충렬서원 역대 원장을 기록한 책첩.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1년에 복원되었다. 『충렬서원 선생안(忠烈書院 先生案)』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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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희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본래 중국 송나라 때 이름 높았던 대학사로,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고려 말 대호군을 지낸 오희보(吳希保)가 말년에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학일리 일대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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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후기의 고문서. 해주오씨가 고문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내린 교첩 12점과 교지 55점, 오달천(吳達天)에게 내린 교지 13점, 오도종(吳道宗)에게 내린 교지 14점, 오도일(吳道一)에게 내린 교지 81점, 오수현(吳遂顯)에게 내린 교지 17점, 오명유(吳命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