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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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오씨 문중의 종계첩. 『수양종첩(首陽宗帖)』은 해주를 본관으로 하는 해주오씨 문중의 종계첩(宗禊帖)으로, 『수양종계첩(首陽宗禊帖)』으로도 부른다. 『수양종첩(首陽宗帖)』이라 부른 것은 해주오씨를 수양오씨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1766년(영조 42) 영의정으로 증직된 감역공(監役公) 오희문(吳希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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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오경민(吳景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역을 지낸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경기도 송탄의 이충부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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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오달천(吳達天)[1598~1648]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한성(漢城) 숭교방(崇敎坊)[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이다. 1620년(광해군 12)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벼슬길에 나아가 사산현역(四山縣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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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북쪽에 위치하며 죽전 및 분당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산수에서 유래되었다. 오산리는 해주오씨 집성촌으로 입향조 오희문을 비롯하여 후손들의 산소가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모현 일대에서는 이웃 능원리의 영일정씨 사패지를 정산이라고 하는데, 이에 비유하여 오산이라고 한다. 이는 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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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정지(貞之). 석성현감을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매우 번창하였는데, 사후 2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거의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손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오희문의 아들 오윤겸(吳允謙)[1559~1636]도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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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楸灘) 또는 토당(土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오경민(吳景閔)의 손자이고,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며, 부인은 이응화(李應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한 뒤 문음으로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시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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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묘. 오윤겸(吳允謙)[1559~1636]의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오윤겸의 본관은 해주이며, 보물 제1096호인 『쇄미록(瑣尾錄)』을 남긴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다. 오윤겸은 어머니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태몽을 꾼 뒤 잉태하여 초명을 성룡(星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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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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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오희문의 일기집. 『쇄미록(瑣尾録)』은 조선 중기에 선공감 감역을 지낸 비연(斐然) 오희문(吳希文)[1539~1613]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으로 피난하며 10여 년간 쓴 일기이다. 1991년 9월 30일에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오희문이 난리 중에도 이와 같은 글을 남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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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주오씨의 용인 입향조. 본관은 해주(海州). 오희보(吳希保)[1360~1426]는 해주오씨 8세손으로, 고려조에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오인유(吳仁裕)를 1대조로 한다. 증조부는 녹사(錄事) 오승(吳昇), 할아버지는 풍저승(豊儲丞) 오효충(吳孝冲), 아버지는 부정(副正) 오사렴(吳士廉), 어머니는 김윤부(金允富)의 딸이다. 부인은 원평서씨인 서민(徐敏)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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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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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국보 9점, 보물 37점과 경기도에서 지정한 경기도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용인시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 보물 9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8점을 집중 관리·소개하고 있다. 광교산 동쪽 서봉사(瑞峰寺) 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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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희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본래 중국 송나라 때 이름 높았던 대학사로,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고려 말 대호군을 지낸 오희보(吳希保)가 말년에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학일리 일대에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