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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259
한자 珠三洞珠岩洞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Juam Village, Jusam-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주삼동 주암마을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2일 오전 10시경, 음력 7월 7일
의례장소 마을회관 옆 수호각
신당/신체 당집|당산한아부지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주삼동 주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자녀의 무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주삼동 주암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2일 오전 10경에 도제를 모시며, 또한 음력 7월 7일 칠석날 칠석제(칠성제, 진세턱)를 마을 공동으로 지내고 있다. 도제는 유교식으로 지내며 풍물이 뒤따른다. 칠석제는 그해에 6세가 되는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 아동들의 만수를 축원하기 위해 진세턱을 내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장만해 와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행사이다.

제사를 지내기 약 일주일 전에 생기복덕을 가려서 유사를 선정한다. 유사는 제수를 마련하고 제사를 진행한다. 유사와 마을 통장은 제사를 지내기 한 달 전부터 근신한다. 동제를 지내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마을기금으로 충당한다. 주암동 동사무소 건립 시 땅을 보상해주기 위해 정부가 지어준 마을창고(165㎡)를 대여하여 임대료 수입이 있기 때문에 마을기금은 넉넉한 편이다. 예전에는 지신밟기를 해서 마을기금을 많이 조성했었는데 약 15년 전에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주삼동 주암 동제를 언제부터 지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된 후로는 계속 지내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다고 한다. 도제와 칠석제를 지내는 날짜는 예전과 같지만, 시간과 장소는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도제를 오후 5시 경에 지냈으나 주민들이 마을총회를 통해 오전 10시로 앞당기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에 있던 느티나무 두 그루에서 도제와 칠석제를 지냈는데, 1979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공터가 있던 자리에 주삼동 동사무소가 들어서면서 정부에서는 마을회관을 지어 보상을 해주기로 하였다. 장소가 마땅치 않자 당산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마을회관을 짓게 된 것이다. 대신에 마을회관 옆에 수호각을 지어 도제와 칠석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도제와 칠석제를 모시는 장소는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수호각으로 기와를 얹은 시멘트 건축물이다. 수호각의 앞에 철제문이 달려 있다. 철제문에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철제문 위에는 수호각(守護閣)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수호각 안에는 수호신의 신체나 그림 등은 없고 감실 안에 당산신위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가 있다. 신격은 당산한아부지(당산할아버지)이다.

[절차]

동제를 지내기 위해 약 일주일 전에 임원회의를 한다. 이 자리에서 그해 도제를 지낼 유사를 선정하고, 제사에 쓸 비용을 정한다. 유사 외에도 축관 1명과 집사 1명을 선정한다. 유사를 선정할 때에는 생기복덕을 가려서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정한다. 유사로 선정된 사람은 일주일 동안 흉길사, 즉 초상집이나 결혼식에 가지 않고 시비를 하지 않는 등 기우(금기)를 한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현대시대에 맞게 금기도 약화되고 금기를 지키는 날짜도 줄어들게 되었다.

제수를 장만하기 위한 장은 유사가 보는데 여수의 장을 이용하고, 가능한 한 좋은 것으로 구입한다. 도제를 지내기 전날인 음력 1월 1일과 칠석제를 지내기 전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수호각과 공동우물을 깨끗이 청소한다. 왼새끼를 꼬아서 금줄을 만들어 유사 집과 마을 입구 세 곳에 친다. 금줄은 도제를 모실 때에만 치고 칠석제를 지낼 때에는 치지 않는다. 제물을 장만하는 유사 집에는 황토를 놓는다. 제기는 도제를 지낼 목적으로 따로 수호각에 보관하고 있는 것을 사용한다.

음력 1월 2일 오전 9시 경에 마을회관에서 총회를 열어 1년 결산 및 다음해 숙원사업 등에 관해 보고를 한다. 회의가 끝나면 수호각으로 이동한다. 유사는 집사의 도움을 받아 수호각 안에 제물을 진설한다. 먼저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켠다. 제물은 일반 기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메를 한 그릇 올리고, 서대나 명태를 넣고 끓인 생선국 한 그릇을 올린다. 동쪽으로는 굴비, 민어, 돔, 양태 등 바다고기를 올리고 서쪽으로는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을 올린다. 대추, 밤, 곶감, 상어포를 올리고 각종 제철과일을 올린다. 찰시루떡을 접시에 담아 올리고 술은 정종을 올린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직접 청주를 담갔다. 도제용으로 빚는 술은 세무서에서 단속을 나올 때도 그냥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구입한 청주를 사용하고 있다.

도제를 지내는 절차는 분향강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구송, 음복, 매식 순이다. 독축을 한 뒤에는 소제(소지)라고 하여 백종이를 태운다. 소지를 할 때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한아부지 세세연대 편안하시고 마을을 지켜주십사 마을 안녕을 지켜주고 하우스에서 키우는 농작물이 잘 되고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높은 벼슬자리 오르게 하고, 어린 청소년들 감기 하나도 없이 잘 지내고 활발하니 건강하게 당산한아부지께서 지켜주옵소서” 라는 말로 구축을 한다. 매식을 할 때에는 창호지에 메, 돼지고기, 과일 등을 조금씩 담아서 묻는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수호각 앞에서 한바탕 당굿을 친다. 그런 다음 풍물을 치면서 마을 공동샘으로 이동하여 샘 앞에서도 간단히 제물을 차리고 샘굿을 친다. 주암마을 샘은 물도 좋고 유래가 깊은 샘이라 주민들은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음력 7월 7일에 칠석제를 지낼 때에는 6세가 된 자녀를 둔 가정에서 떡, 막걸리, 전 등의 음식을 장만해서 수호각으로 가져온다. 남녀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아이들의 만수를 축원하기 위해 당산한아부지에게 빌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라고 한다.

칠석제를 지내기 며칠 전에 해당자가 있으면 미리 신청을 받는다. 신청 상황에 따라 동네에서 음식을 준비하기도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걸게 해오지 않고 간단하게 해오고 있으며 5~6만원씩 돈으로 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축문]

축묵은 다음과 같다.

"유 세차○년○월삭○일 일진 감소고우 토지지신 천개지벽 일월성신광명 복이 유아주암동 신명소시 재해불침 백길성응 덕고화악 택심하해 설단치제 서품식진 공신전작 서수지천 세사 상 향(維 歲次○年○月朔○日 日辰 敢昭告于 土地之神 天開地闢 日月星辰光明 伏以 惟我珠岩洞 神明所施 災害不侵 百吉成應 德高華嶽 澤深河海 設壇致祭 庻品式陳 恭伸尊酌 庻羞袛薦 歲事 尙 饗)"

[부대행사]

주삼동 주암 동제가 끝나면 굿을 치고 술을 한잔씩 하면서 어울린다. 예전에는 섣달 그믐날 느티나무 당산에 줄을 걸어 양쪽에서 잡아당기면서 “어야 어야” 소리를 지르며 줄을 만들었다. 청년들은 그 줄을 어깨에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줄다리기는 그믐날부터 정월 보름날까지 했다.

예전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 보름까지가 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바로 인근의 봉계마을[봉계동]과 줄긋기를 겨루었다. 보리밭에서 줄긋기를 할 때 “주암마을 아그덜 코걸어 가거라 얼싸 덜이덜이 얼싸 덜이덜이”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줄긋기 말고도 봉계주민들과 횃불싸움도 했다. 대나무에다 솜뭉치를 달아서 횃불을 만들어 이것으로 싸움을 하는 것인데, 진짜 싸움이 아니라 친목 싸움이었다고 한다. 또한 약 15년 전까지는 도제를 지내고 나서 집집마다 마당밟이를 했었는데 중단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인터뷰(주삼동 주암마을 주민 김한평, 남, 76세, 2007.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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