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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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山洞聖堂 |
영어의미역 | Dongsan-dong Catholic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 1117[동산7길 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두호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
[설립목적]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아버지와 성령을 믿는 이들이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표지(標識)인 교회의 본질을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30년대 여수시에는 천주교 신자가 이동관[다테오]과 아들 이남수[요한, 1906년] 및 그의 가족, 여수항과 철도를 건설하기 위하여 와 있던 일본인 온도고노 가족이 있었다. 당시 여수시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구교구에서 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성당 정수길[요셉] 신부를 통하여 여수시 군자동에 2,776㎡ 대지와 일본인 집을 구입하였다. 1936년 6월 29일 경상남도 통영성당의 이민두[다테오] 신부를 여수항성당[동산동성당 전 명칭] 초대 신부로 발령하면서 여수시 최초의 성당이 설립되었다.
1941년 이민두 신부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되면서 성당은 박해를 당하였고,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6·25전쟁 과정에서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 1955년 성 골롬바노 수도회 소속 부 바드리시오 신부가 부임하면서 여수시 공화동에 5,619㎡ 대지를 매입하여 1958년 10월 준공식을 하였다. 성당은 부 바드리시오 신부의 고국 아일랜드에서 설계하였는데 붉은 벽돌로 외장을 한 아일랜드풍의 건축물로 제단, 천장, 마룻바닥, 창문, 종탑의 십자가, 종, 예수 십자가의 길 십사처(十四處), 지붕 등은 여수시 최초의 서양 건축물이자 역사적인 건물이다.1956년 6월 레지오 마리애 바다의 별 쁘리시디움을 창단하였다. 1961년 9월 서교동성당이 설립되면서 많은 신자들이 교적을 이전하였다.
1967년 3월 백합유치원 1학급을 여수교육지원청으로부터 허가받아 개원하였다. 1969년 5월 서교동성당과 함께 여수시 여서동 산100번지에 11,504㎡ 임야를 매입·조성하여 천주교 공원묘지로 사용하다 이곳이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1989년 8월 여수시 봉두리 산190-6번지에 101,509㎡ 임야를 조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2004년 9월 1일 제21대 전영[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한 뒤 교육관 건립을 착수하여 2005년 12월 1일 교육관, 사제관, 수녀원, 수녀관 성심의 집을 축성하였다. 2014년 1월 대성전 리모델링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주보는 ‘평화의 모후’이다. 여수시 공화동 4,241㎡ 대지에 391㎡ 성전과 3층 규모의 925㎡ 교육관, 사제관, 수녀관 성심의 집, 사무실을 비롯한 부속 건물, 만남의 광장인 1,652㎡ 정원, 991㎡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층 교육관에는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과 식당, 주방 등이 있다. 주임 신부와 2명의 수녀가 있으며 신자 수는 약 2,800명이다. 동산동성당 관할인 덕충동에는 인보성체수도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노인들의 쉼터 예리고의 집이 있고, 공화동에는 시각장애인 쉼터 가톨릭 시각장애인선교회관이 있다. 관할 구역은 여수시 공화동, 관문동, 수정동, 동산동, 덕충동, 고소동, 종화동, 군자동, 중앙동 일대이다.
[의의와 평가]
동산동성당은 여수시 최초의 본당이다. 설립 당시의 어려움을 딛고 여수 지역 천주교의 모본당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 성당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