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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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石根 |
영어공식명칭 | Jeong Seokgeun |
이칭/별칭 | 조천석근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10월 17일 - 정석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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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정석근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2년 8월 26일 - 정석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6년 - 정석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111 |
활동지 |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정석근(鄭石根)[1879~1952]의 본적과 주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출생지는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이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조천석근(鳥川石根)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9일 오후 4시경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로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일어났다. 당시 정석근은 박재복(朴在福)에게 참가를 독려 받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뒤이어 군중이 창수주재소를 공격하자 정석근은 신리동의 이형우·김대지 등과 함께 주재소의 서류·장부·공문서 등을 찢어 버리고 파기하였으며, 순사 숙소의 굴뚝을 무너뜨렸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정석근은 4월 10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주거침입, 건조물 손괴, 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정석근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