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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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商 |
이칭/별칭 | 자견(子見),백사(白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841년 8월 27일 - 김응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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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5년 5월 13일 - 김응상 사망 |
출생지 | 김응상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大田)마을 |
묘소|단소 | 김응상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 산 90번지 |
사당|배향지 | 두산정 -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 |
성격 | 자선가 |
성별 | 남 |
본관 | 김녕 |
저술 | 『백사시집(白史詩集)』 |
대표 관직|경력 | 통정대부 |
[정의]
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자선가이자 문인.
[가계]
김응상(金應商)의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자견(子見), 호는 백사(白史)이며, 1841년(헌종 7) 8월 27일에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大田)마을에서 태어나 1915년 5월 13일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부는 김연백(金鍊白), 증조부는 김녕 김씨 영천 입향조인 김정기(金鼎基), 조부는 김치윤(金致潤)이다. 아버지는 김효감(金孝感)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윤달수(尹達秀)의 장녀이다. 부인은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하경완(河瓊琬)의 딸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효자비가 세워진 김형표(金炯杓)이며, 사위는 양천인 허위(許渭)와 김해인 김성명(金聲明)이다.
[활동 사항]
김응상은 구한말에 활동한 자선가이자 시호(詩豪)였다. 당시에는 혼란스런 국내 사정과 연이은 흉년으로 인하여 인심이 흉흉하고 거리에는 병자와 아사자(餓死者)가 넘쳤다. 이에 김응상은 병자는 약을 구하여 치료하여 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었으며, 배움을 원하는 사람은 집으로 데려와 숙식을 제공하면서 글과 예절을 가르치는 등 많은 구휼을 하였다.
김응상은 능필(能筆)이었으며, 문재(文才) 또한 뛰어나 한시 1,300여 편을 남겼으므로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박사였던 이가원(李家源)을 비롯하여 향내의 유학자인 조규철(曺圭喆)·이호대(李好大) 등은 그를 시호(詩豪)라고 일컬었다. 관직은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학문과 저술]
5권으로 된 『백사시집(白史詩集)』이 있다.
[묘소]
김응상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 산 90번지 삼귀지 옆 두리봉에 사좌(巳坐) 향으로 있으며, 완산(完山) 이호대(李好大)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에 유덕을 추모하는 두산정(斗山亭)이 있는데,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던 문학박사 진성(眞城) 이가원(李家原)의 기문(記文), 제헌국회의원인 백파(白坡) 정도영(鄭島榮)의 상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