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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53
한자 普賢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남주

[정의]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운재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전기의 숙박처.

[개설]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영암의 보현원(普賢院)덕진면 영보리 보동 마을 영원재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폐원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참 제도와 함께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 전달의 목적으로 이동하는 관리들에게 숙박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영암읍지(靈巖邑誌)』 등에서 확인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 역원 조에 의하면, 영암군에는 보현원(普賢院), 수원(燧院), 청풍원(淸風院)의 3개 원이 있었다. 보현원은 영암군의 동쪽 2.75㎞[7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영운재에 해당한다.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에 의하면 지금은 없어졌지만 보동(寶洞)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었다. 영운재는 영원재가 음치된 것인데, 영원재라는 말은 고개와 원의 합성어이고, 보현원의 보현은 보동의 고개로 해석된다. 영원재는 역로상 교통으로도 두 갈래길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는 강진, 해남에서 청풍원을 지나 오림역으로 가는 길이다. 또 하나, 영암읍치에서 덕진면 영보역을 지나 오림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영원재를 넘어야 한다.

[변천]

조선 전기에 있었던 보현원이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이후의 기록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는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조선 전기에는 인적이 드물어 관이나 사찰에서 원을 운영하였지만 조선 후기에는 대부분 폐지되었다. 보현원의 경우는 역로가 신안역 방향으로 변하고, 덕진면영보역영암읍역리 마을로 이동하면서 폐원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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