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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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峴里 岩刻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68-1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도남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642년 - 전설에 의해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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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68-1구[좌표: N37° 44′ 45.6489″, E126° 56′ 56.4863″] |
성격 | 암각문 |
관련 인물 | 김언방(金彦昉)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암각문.
[개설]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개울가에 여러 바위에 ‘문장동천(文章洞天)’을 비롯한 다양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석현리 암각문(石峴里岩刻文)이다. 원래 동천(洞天)이란 명산(名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문장동천은 문장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옥순암(玉筍岩)’·‘분설담(噴雪潭)’·‘관서암(觀書岩)’·‘탄금대(彈琴臺)’·‘천인벽(千仞壁)’·‘쌍류폭(雙流瀑)’·‘운영담(雲影潭)’·‘수렴폭(水簾瀑)’ 등 총 9개의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건립 경위]
‘문장동천’이라고 쓰여 있는 바위에는 ‘임오오월각(壬午五月刻)’이라고 암각되어 있어 이들 글씨들이 새겨진 시기를 알려 주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때 병조 참판을 지낸 김언방(金彦昉)이 화를 피하여 양주 지역에 숨어들어 와 살면서 계곡의 바위 8곳에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그때가 임오년인 1642년(인조 20)이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위치]
장흥관광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달리다 돌고개로 올라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2㎞ 지점의 고개 정상부에 못 미쳐 폭포산장이 자리하는데, 석현리 암각문은 폭포산장 안의 계곡에 위치한다.
[형태]
‘문장동천’은 가로 36㎝, 세로 130㎝의 크기로 써 있다. 이외 다른 글씨의 크기를 살펴보면, ‘관서암[책을 읽을 만한 바위]’은 가로 36㎝, 세로 76㎝, ‘분설담[폭포의 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얀 포말이 뿜어 올라오는 연못]’은 가로 77㎝, 세로 33㎝, ‘수렴폭[마치 병풍을 친 듯이 폭포수가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곳]’은 가로 77㎝, 세로 27㎝의 크기이다.
1998년 8월 집중 호우 당시 유실되어 파손된 ‘쌍류폭[큰 바위를 끼고 두 갈래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은 77㎝, 세로 31㎝이고, ‘옥순암[마치 잘 빠진 대나무[玉荀]처럼 생긴 바위]’은 가로 71㎝, 세로 33㎝, ‘운영담[폭포수가 떨어지면서 하얀 안개가 피어올라 마치 하늘에 구름이 끼는 것과 같은 곳]’은 가로 77㎝, 세로 26㎝, ‘임오오월각’은 가로 17㎝, 세로 74㎝, ‘천인벽[바위가 매우 높다는 것]’은 가로 35㎝, 세로 76㎝, ‘탄금대[비파 혹은 거문고를 연주하던 바위]’는 가로 67㎝, 세로 23㎝이다.
[의의와 평가]
석현리 암각문은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 있는 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老姑山篤才洞秋史筆蹟岩刻文)[경기도 기념물 제97호]과 함께 양주에 있는 선현들의 암각문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조선 시대 선비들의 기상과 웅혼한 필체를 엿볼 수 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