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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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而章 |
이칭/별칭 | 숙빈(叔彬),용담(龍潭),도천(道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영성 |
출생 시기/일시 | 1547년 - 박이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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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3년 - 박이장 생원·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76년 - 박이장 기자전 참봉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86년 - 박이장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1년 - 박이장 하절사 김응남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박이장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박이장 사간원 정언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박이장 수원 부사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박이장 동지사의 부사로 북경에 다녀옴 |
몰년 시기/일시 | 1622년 - 박이장 사망 |
출생지 | 박이장 출생지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
부임|활동지 | 박이장 부임지 - 전라북도 순창군 |
묘소|단소 | 박이장 묘소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유리 |
사당|배향지 | 청천 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
사당|배향지 | 회산사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매안리 |
성격 | 문관|의병장|순창 군수 |
성별 | 남 |
본관 | 순천(順天) |
대표 관직 | 대사헌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숙빈(叔彬), 호는 용담(龍潭)·도천(道川). 증조할아버지는 박한하(朴漢何), 할아버지는 참봉 박식(朴埴), 아버지는 승지 박양좌(朴良佐)이다. 어머니는 성산 배씨(星山裵氏)로 별좌(別坐) 배은(裵垠)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이장(朴而章)[1547~1622]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에서 태어났으며, 남명(南冥) 조식(曺植),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등을 사사하였다. 1573년(선조 6) 생원·진사 양과에 급제한 뒤 1576년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영숭전 참봉(永崇殿參奉)에 제수되었다. 1586년(선조 19) 별시 문과에 급제, 승문원 정자를 거쳐 예문관 대교(藝文館待敎), 홍문관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591년 하절사(賀節使) 김응남(金應南)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다녀왔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인홍·김면(金沔)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며,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1593년 이후 사간원 정언, 이조 좌랑, 이조 정랑, 순창 군수 등을 거쳐 1597년 수원 부사가 되었다. 1603년 동지사(冬至使)의 부사(副使)가 되어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 붕당(朋黨)의 폐단을 논하다가 시의(時議)를 거슬러 영해 부사(寧海府使)로 좌천되었으며 병조 참판으로 복직한 뒤 여러 벼슬을 지냈다. 1615년 인목 대비를 비호하는 이원익(李元翼)을 신구(伸救)하다가 파직된 뒤,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다가 1622년(광해군 14)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 『용담집(龍潭集)』 7권 3책, 『정서 절요(程書節要)』, 『육경 여해(六經蠡海)』 등이 있다. 이밖에 지방지로 『수원지(水原志)』, 『영해지(寧海志)』가 있다.
[묘소]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망한 뒤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의 청천 서원(晴川書院),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매안리의 회산사(檜山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