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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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東游 |
이칭/별칭 | 학경(學卿),호계(虎溪),유동유(柳東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615년 - 류동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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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0년 - 류동유 과거 급제 |
출생지 | 류동유 출생지 - 전라북도 남원시 |
거주|이주지 | 류동유 이주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
활동지 | 류동유 활동지 - 전라북도 순창군 |
성격 | 학자|문장가 |
성별 | 남 |
본관 | 문화 |
대표 경력 | 학생 |
[정의]
조선 후기 순창에서 활동한 문장가.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경(學卿), 호는 호계(虎溪). 고조할아버지는 석헌(石軒) 류옥(柳沃), 아버지는 류호(柳灝)이다. 형제로는 류동숙(柳東淑), 류동순(柳東洵), 류동연(柳東淵)이 있다.
[활동 사항]
류동유(柳東游)[1615~?]는 1615년(광해 7) 남원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결혼한 이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에 정착하였다. 류동유는 지기(志氣)가 고결(高潔)하고 행실이 지조가 높고 강직하였다. 그 모습이 단아(端雅)하고 차림새와 몸가짐이 항상 엄숙(嚴肅)하였다. 1650년(효종 1) 경인 증광시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과거(科擧)에 급급하지 않고 오직 산수를 즐기어 호점(虎坫)의 기슭에 호계정(虎溪亭)을 짓고 친구들과 함께 세상의 시름을 잊은 채 산수와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정자에는 류동유의 형제인 류동순과 류동연이 지은 시와, 순창 군수를 지낸 최온의 시가 현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