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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의 아기무덤」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389
한자 城隍堂-
이칭/별칭 「용호리 성황당」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 『동면지』 수록
성격 무덤설화
모티프 유형 소금장수들의 애환|성황당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의 성황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성황당의 아기무덤」은 부강에서 용호리 나룻터에 소금배가 들어오면서 소금장수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소금장수인 사근이는 가출한 아내를 찾다가 어린 아들마저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다. 소금장수들이 아들의 무덤 근처에서 쉬면서 돌을 던지고, 사람들도 돌을 던져서 성황당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6년 조치원문화원에서 발간한 『동면지』에 「성황당의 아기무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장소와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부강 용호리 나루터에는 소금배가 들어오면서 소금장수들이 모여들었다. 청주 땅 산골에 살던 사근이는 삼장사를 따라 가출한 아내를 찾기 위해 다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소금장수를 하면서 여러 지방을 떠돌았다. 그러나 공주를 지나 동촌쪽에서 아들이 열병에 걸려 죽었다. 사근이는 통곡하며 아들을 용호리에 묻었다. 그러다 청주성 문 앞에서 아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사근이는 지겟작대기로 아내를 후려쳐서 삼장수의 행방을 찾아내었다. 사근이는 다리 밑에서 코를 골고 자는 삼장수를 돌로 쳐서 죽이고, 아내의 손목을 끌고 용호리 아들의 무덤으로 데리고 간다. 사근이는 아내에게 성황당에 두 번 절을 하게 한 다음, 비수로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목을 찔러 자결한다. 소금장수들은 사근이를 아들의 무덤이 보이는 위쪽에 묻었으나, 아내는 행실이 나쁘다고 돌을 매달아 강물에 던졌다. 그 후 소금장수들은 용호리 나루에서 소금을 받아지고 여기까지 와서 숨을 돌릴 때는 언제나 돌을 주워 아기의 무덤에 던졌다. 이 관습은 십 년이 지나고 백 년이 지나도 계속되어,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도 무덤에 돌을 던져야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돌이 쌓인 돌무덤을 보고 성황당이라고 불렀으며, 소원을 빌기 위해 성황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성황당의 아기무덤」의 주요 모티프는 ‘소금장수들의 애환’과 ‘성황당’이다. 용호리에 들어오는 소금을 등짐으로 지고 충청도 일원에 보급하면서 떠돌던 소금장수들의 고달픈 사연이 성황당의 전설이 되고, 민간신앙으로 토착화된 것으로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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