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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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礏 |
이칭/별칭 | 중준(仲峻)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병무 |
출생 시기/일시 | 1543년 - 신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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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신급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05년 - 신급 『호성 원종 공신록』에 오름 |
추모 시기/일시 | 1703년 - 신급 사헌부 장령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703년 - 신급 정려 |
정문 | 효자 신급 정문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 |
성격 | 학자|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평산(平山)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중준(仲峻).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 신상(申鏛)이고, 아버지는 별검 신화국(申華國)이다. 4형제 중 둘째아들이다. 첫째는 병조판서 신잡(申磼)이고, 셋째는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패한 후 자결한 삼도 순변사 신립(申砬)이며, 넷째는 경기 병사로 임진강에서 전사한 신할(申硈)이다.
[활동 사항]
포천에서 태어난 신급(申礏)은 어릴 때부터 품성이 강직하고 총명하며, 학문에 힘 쏟아 경서는 물론 춘추 전국의 역사서까지 달통하였다.
1583년(선조 16) 동서 붕당 간의 화합을 내세웠던 병조판서 이이(李珥)에게 불만을 가진 동인 계열의 홍혼(洪渾)·우성전(禹性傳)·김응남(金應南)·박근원(朴謹元) 등이 이이·성혼(成渾)·박순(朴淳)의 작은 과실을 사림의 공론으로 공격하자, 신급은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부당함을 강력히 주장하며 그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는 선조로부터 충성으로 나라에 보답한 선비 기상의 상징이라며 칭찬받았다. 선조는 특히 당시 여진족 이탕개(尼蕩介)의 침입을 격퇴한 친동생 신립(申砬)의 기상과 버금간다며 가문의 절의에 감탄한다는 비답(批答)을 내리고, 6품계를 하사하였다. 그 뒤 정권을 장악한 서인 정철(鄭澈)이 선공감 감역(監役)에 추천하였으나 마다하고 재야에서 처사로 생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모를 모시고 강원도 이천으로 피난하였는데, 잠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피난처를 나왔다가 노모와 가족이 왜적에 화를 당하였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절벽에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605년(선조 38) 『호성 원종 공신록(扈聖原從功臣錄)』에 올랐다. 1703년(숙종 39) 나라에서 효행을 기려 사헌부 장령으로 추증하고 효자 정문을 내렸다. 정문은 현재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에 위치하며, 향토 유적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