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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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三問墓碑 |
영어의미역 | Grave Monument of Seong Samm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현정 |
성격 | 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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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02년 |
관련인물 | 성삼문 |
높이 | 135㎝ |
너비 | 65㎝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58 |
소유자 | 창녕성씨 종중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삼문의 묘비.
[건립경위]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은 1435년(단종 1)에 생원 급제하였고, 1438년 대과에 급제하여 세종, 문종, 단종을 내리 섬기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단종이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하였는데, 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에서 다리를 꿰뚫고 사지를 찢는 처형을 받았다. 이런 성삼문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성삼문 묘비가 세워졌다.
[위치]
가야곡면사무소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동남쪽으로 4㎞ 정도 거리에 강청리와 양촌리의 경계인 사송재 고개가 있으며, 이 고개를 넘어 250m 정도 가면 도로의 동쪽에 성삼문 사당이 있다. 성삼문 사당의 남동쪽 북서향 사면에 성삼문 묘비와 하마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형태]
낮은 기단에 지붕[옥개]형 이수를 올린 형태로 1802년(순조 2) 건립되었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35㎝, 너비 65㎝, 두께 21㎝이다. 성삼문의 묘 앞에 세워져 있는데, 대리석 비신에 지붕돌과 농대석을 갖추고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 ‘매죽당성선생묘비명(梅竹堂成先生墓碑銘)’이라고 새겨져 있고, 사면비문(四面碑文)에는 ‘매죽당성선생묘비명병서(梅竹堂成先生墓碑銘幷序)’라고 되어 있다. 비문은 송환기가 찬하고 김의순이 서하고 전서를 썼다.
[의의와 평가]
성삼문의 묘 앞의 묘비에는 성삼문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그의 곧은 절개와 지조를 찬양하고, 그의 능력이 다하지 못함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또한 『논산금석문대관』을 보면 묘비를 건립할 당시의 여러 사람들이 발의하여 묘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묘비 세우기를 계획한 사람이 취금헌 박팽년의 후손인 대사간 박기정이라고 되어 있다. 그 밖에 여러 제군들이 비를 건립하는 일을 도왔다고 기록에 나와 있는데,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 당시 관련 인물들이 지역 사회에서의 활발한 사족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자료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