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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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南大 |
영어공식명칭 | Gang Namdae |
이칭/별칭 | 대악(大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석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 강남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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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0년 - 강남대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2월 15일 - 강남대 효자 효부 열녀 발굴 중앙 위원회 표창 수상 |
출생지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晋州) |
[정의]
근대 무주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대악(大岳)이다.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정종 때 상의 문하찬성사(商議門下贊成事)를 지낸 공목공(恭穆公) 강시(姜蓍)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방수(姜芳秀)이다.
[활동 사항]
강남대(姜南大)[1887~1950]는 진산군 부남면[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유평(柳坪)에서 출생하였다. 농가에서 태어난 강남대는 어려서 한학을 배워 예의가 바르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효를 다해 모셨으며, 돌아가자 3년 동안 매일 산소를 참배하는 효를 다하였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끼라도 고기 반찬을 빼놓은 적이 없었으며, 겨울이면 부모가 거처하는 방의 온도를 걱정하여 자정이 넘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부모가 사망하자 3년간 머리도 깎지 않고 상복을 한 번도 벗지 않아서 누더기가 되었는데, 그것을 걸치고 4㎞나 떨어진 묘소를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배하여 새로운 산길이 생기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1950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2월 15일 효자 효부 열녀 발굴 중앙 위원회에서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