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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관찰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075
한자 晋州觀察府
영어의미역 Jinju Magistrate's Offic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895년 5월 26일[음력]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1895년 5월 26일[음력]
폐지연도/일시 1896년 8월 4일연표보기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조선 정부의 행정 기관.

[개설]

진주관찰부는 1년 2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한 행정기관으로서 경상남도청의 모태가 되었던 조선 말기 경남도정의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진주관찰부는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찰사가 최초로 부임해 집무를 본 곳이라는 점에서 경상남도의 역사는 진주관찰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정배경 및 목적]

진주관찰부는 1894년 갑오개혁과 1895년 을미개혁의 결과로 탄생했다.1895년 음력 5월 26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개화파 정권은 오랫동안 존속해온 8도제를 전격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한다고 공포하였다. 이 23부제는 전국을 크게 23개 관찰부로 나눈 새로운 지방행정제도였다. 바로 23부 중의 하나로 진주에 관찰부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즉 격동기의 근대사속에서 집권에 일시 성공하였던 개화파 정권의 개혁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등장하였다.

[내용]

진주관찰부는 조선시대의 진주목을 계승하는 한편 진주군을 비롯한 중서부 경상남도 일대의 새로 개편된 21개 군을 거느렸다(진주군·고성군·진해군·사천군·곤양군·남해군·단성군·산청군·하동군·거창군·안의군·함양군·합천군·초계군·삼가군·의령군·칠원군·함안군·창원군·웅천군·김해군).

진주성에 관찰부가 설치되자 그동안 지방행정관으로 기능했던 진주목사는 별도의 사령장 없이 진주군수로 관직명이 바뀌었다. 또한 21개의 다른 지역 군수와 현령 및 현감들도 모두 각 지역의 군수로 이름이 통일되면서 진주관찰사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었다. 진주관찰부에 재직했던 관료는 관찰사를 비롯해 참사관·주사·경무관·경무관보·총순 등 행정 관료와 경찰 관료로 구성되었다.

[변천]

진주관찰부 설치가 공포된 3일 후에 진주관찰부의 수령인 관찰사가 임명되고 진주에 부임한 관찰사가 옛 우병사의 집무청이었던 진주성 선화당에서 집무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주관찰부가 설치된 후 전국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시작으로 단발령과 이관파천 등의 정치적인 불안이 계속되었고 이로 인한 의병봉기도 격렬해 진주관찰부가 점령되는 등 제대로 행정업무가 수행되지 못했다. 결국 진주관찰부는 개화파정권이 무너지면서 전국에 설치되었던 각 관찰부와 함께 폐지되었고 지방제도도 다시 도(道)제로 환원되면서 13도제로 변화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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