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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766
한자 聖堂
영어의미역 Catholic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주언

[정의]

그리스도교 교파의 하나인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이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모이는 회당.

[연원]

진도의 천주교 선교는 1870년경 제주도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 신부가 범선을 타고 목포로 가던 중 심한 풍랑을 만나 상조도 동구리에 안착하면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신부는 천주교 설교 및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그 결과 프랑스 신부가 진도에 표착한 지 30년 후인 1900년~1904년에 동구리공소와 창유리공소, 인지리공소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들 공소는 당시 민간 가옥을 구입해서 사용했으며 목포 산정동 본당 드애(조유도)초대 주임신부가 1909년까지 3개 공소를 관할하면서 세례 및 예비자교리를 시작했다.

[변천]

1951년 8월 군내면에 산정동 본당의 네 번째 관할공소인 신동공소가 개설되었으며, 그 해 9월 산정동 본당 안신부(토마스 모란)가 고광민(베드로)을 진도 전교회장으로 파견하여 현 진도성당 자리의 한옥을 구입했다. 고광민은 당시 지산면 소포리에서 한옥을 구입하여 공소를 개설하고 초대 공소회장에 김베네딕뜨를 선임하고 현 소포리 출신 오요한 신부의 부친 오기섭(베드로)과 함께 전교에 힘썼다.

1954년 11월17일 진도성당이 본당으로 승격되자, 해럴드 헨리 주교는 진도의 모든 공소를 산정동 본당에서 진도성당으로 이관시키고 초대 본당신부로 장옥석 신부를 임명했다. 당시 진도 본당의 신자는 52명, 공소 신자 53명에 예비신자가 1백여 명이 되었다.

장옥석(루치오) 초대신부는 1956년 10월18일 현재의 본당 자리에 52평 규모의 성전을 신축했고, 재임기간에 고군면 오산리, 군내면 나리, 정자리, 월가리, 지산면 소포리, 의신면 명금리에 공소를 개설했다. 2대 예레미아 신부는 의신면 응덕리공소를, 11대 조현철 신부는 1985년 임회면 석교공소를 개설했다. 이후 의신면 돈지리에 의신공소와 고군면 가계공소가 개설되었다.

2002년 1월 22일 유진길본당이 진도본당에서 분리되었고, 이준한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현황]

2개의 본당과 산하 14개소로 늘었던 공소는 진도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및 경제적 곤란으로 점차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신자 수는 줄고 낡은 건물은 복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6년 현재 진도본당은 석교공소, 인지공소, 소포공소 등 3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고, 유진길본당은 나리공소, 신동공소, 오산공소, 가계공소, 연주공소, 돈지공소, 명금공소, 창유공소, 동구공소 등 9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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