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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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銀水寺 |
이칭/별칭 | 정명암(正明庵),상원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406[동촌리 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석 |
건립 시기/일시 | 1920년 - 은수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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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70년경 - 은수사 조계종으로 등록 |
개칭 시기/일시 | 1985년 - 은수사 태고종으로 종단 변경 |
현 소재지 | 은수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406[동촌리 6] |
성격 | 종교 시설 |
창건자 | 이규헌 |
전화 | 063-433-2502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개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은수사는 원래 개인 사찰이었다. 은수사는 1920년 마이산 아래 진안읍 단양리 사양동에 살던 이규헌(李圭憲)[1853~?]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정명암(正明庵)’이라 이름 하였다. 1970년경 조계종에 전통 사찰로 등록되었으나, 조계종단과 성격이 맞지 않아 1985년경 당시 주지인 황혜수가 태고종으로 종적(宗籍)을 변경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은수사는 현재 태고종 소속이다.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는데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하였다.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에 의해 중창되었는데,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한 것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 요사채를 건립하였다.
[활동 사항]
마이산신(馬耳山神) 제단(祭壇)이 있어 매년 10월 11일이면 진안군 마이 제전 위원회에서 마이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매년 군민의 날 전야에 산신제를 올린다. 사찰에서는 봄과 가을로 초엿새 날에 산신제를 지낸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2013년 현재 주지는 이남성이다. 별도의 신도 조직은 없고 신도 수는 약 100명 정도이며 법회에 참여하는 신도는 대략 30여 명 정도다. 불사의 규모에 따라 승려는 2명에서 10명 정도로 변동이 있다. 그러나 은수사가 절경으로 유명한 관광지 내에 위치한 때문인지 많은 관광객들로 항시 붐비고 있다.
은수사는 좌측에 대적광전(大寂光殿), 우측에 무량광전(無量光殿)이 있고 중간에는 국내에서 최대 크기인 법고가 자리하고 있다. 그 뒤로 산신당(山神堂)이 있고 조금 뒤쪽으로 마이 산신각(馬耳山神閣)이 있으며, 그 밖에 태극전(太極殿)과 요사 1동 등이 있다.
대적광전은 이전에 있던 약사전과 극락전을 함께 수용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이다. 무량광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또한 태극전에는 조선 이태조(李太朝)와 마이산에 얽힌 설화들에 관한 자료인 「몽금척도(夢金尺圖)」[금척 수수도라고도 함]라 부르는 모사된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은수사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이고,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이다. 줄사철나무 군락은 마이산이 이 군락의 북방 한계 지역인데 은수사 뒤쪽 가파른 벼랑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관련 문물]
조선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과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은수사에는 1982년 제작된 국내 최대 크기인 법고가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