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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촌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425
한자 安村集
영어공식명칭 Anchonjib
이칭/별칭 안촌세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61년연표보기 - 『안촌집』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08년 - 『안촌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소장처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명륜3가 53-21]
성격 문집
저자 박광후
편자 기정진
권책 4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9.8×19.4㎝[전체 크기]|20.6×15.0㎝[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박광후의 문집.

[저자]

박광후(朴光後)[1637~1678]의 본관은 순천(順天)으로, 자는 사술(士述)이고 호는 안촌(安村) 또는 외성당(畏省堂)이다. 아버지는 박천용(朴天用)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 남이령(南以寧)의 딸이다. 전라도 광주(光州) 아산리(鵝山里)에서 태어났으며, 1666년(현종 7)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여러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1678년(숙종 4)에 전라도 광주 안청리(安淸里)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묘소는 전라도 광주 정광산(凈光山)[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다. 박광후는 광주에 있던 진천사(眞泉祠)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1861년(철종 12)에 기정진(奇正鎭)이 박광후의 유고를 『안촌집(安村集)』으로, 아들 박중회(朴重繪)의 유고를 『소은집(素隱集)』으로 정리하여 이를 합쳐 『안촌세고(安村世稿)』로 엮었다. 이후 박광후의 후손 박원규(朴元圭)가 부록을 추가하고, 1908년(순종 2)에 박현동(朴賢東)의 발문을 실어 활자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안촌집』은 4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전체 크기는 29.8×19.4㎝, 반곽은 20.6×15.0㎝이다. 행자수는 10행 20자이며,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안촌집』은 권두에 기정진(奇正鎭)이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 23수, 소(疏) 2편, 서(書) 4편이, 권2에는 서(書) 1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에는 잡저(雜著) 3편, 어록(語錄) 2편, 기(記) 2편이, 권4는 제문(祭文) 3편, 축문(祝文) 3편, 묘갈(墓碣) 1편, 행장(行狀) 1편, 속편부록(續編附錄)으로 구성되었다. 시는 박광후가 대부분 1675년(숙종 1)부터 만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라도 유생을 대표하여 올린 상소와 유배를 간 스승 송시열을 위문하는 편지 등이 수록되었다. 속편 부록은 박광후 사후 저자에 대한 기록을 엮은 것으로, 예송논쟁 이후 유배된 송시열을 구명하기 위한 저자의 활동을 기록한 글인 「갑을록(甲乙錄)」 및 외성당차운시(畏省堂次韻詩) 10수, 외성당기(畏省堂記) 2편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안촌집』은 조선 후기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인 박광후의 활동과 교유관계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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