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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58
영어공식명칭 Jo Sach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46년 8월 8일연표보기 - 조사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 - 조사천 5.18민주화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연표보기 - 조사천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활동지 광주교육대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필문대로 55[풍향동 1-1]지도보기
활동지 광주계림초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중앙로 320[계림동 85-24]지도보기
활동지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건축업 종사자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조사천[194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조사천은 1980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전남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건축업을 하고 있었다. 5월 18일 비상계엄령이 확대되어 예정되었던 공사가 미루어지자 조사천은 아내와 함께 처가에 가서 농사일을 돕고 5월 20일에 광주시로 향하였다. 조사천은 집으로 가는 중 광주교육대학[지금의 광주교육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계엄군들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말리다가 자신도 구타당하였다. 조사천은 분노하여 5월 21일 집에 온 지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조사천광주계림국민학교 뒤쪽에서 시위 차량에 올라탔다. 조사천은 집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하였다. 이때 조사천은 총탄에 맞아 주위의 학생들에 의해 급히 광주기독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하였다.

조사천의 일행 중 한 명이 아내에게 사망 소식을 알렸고, 아내는 광주기독병원 영안실에 시체로 누워 있는 남편을 발견하였다. 조사천의 시신은 광주기독병원에서 전라남도청으로, 다시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시신은 심하게 부패되어 관 틈새로 체액이 흘러내려 비닐로 감싼 채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57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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