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07 |
---|---|
한자 | 光山庾氏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 Yu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유홍을 시조로 하는 광주광역시의 세거 성씨.
[연원]
광산유씨(光山庾氏)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광산현 촌성(村姓)으로 나오는 성씨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유금필(庾黔弼)을 시조로 하는 평산유씨와 유필(庾弼)[?~1155]을 시조로 하는 무장의 무송유씨(茂松庾氏)에 대한 설명이 있다. 고려 의종 때 평장사를 지낸 유필은 본디 유금필의 후손으로 분적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두 본관 외에 광주유씨 등 17본을 나열하고 있다. 유금필은 본디 고려 태조 왕건의 기반 지역인 황해도 평산[오늘날의 백천군] 출신이다. 유금필은 딸을 왕건의 제9부인으로 들여보내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한 아들은 광종 때 피살되었다. 유금필의 손자 유방(庾方)은 현종 때 전라도 탁사정 등 문신들이 숙청당할 때 같이 화를 입었다. 평산유씨는 고려 때 후비를 낸 공신 집안이었지만, 현종 이후 한미해지고 말았다.
백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전라도 사람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던 의종[1146~1170] 때 전라도 경계인 무송을 본거지로 하는 유씨로 나타나 유씨의 새 본관을 이루었다. 유필의 후손인 유홍을 시조로 내세운 기록은 『씨족원류』이다. 무송 사람 유홍은 광산김씨 김연(金鍊)[14세, 평장공파 3세]의 사위이다. 김연의 아들 김지숙(金之淑)[1237~1310]은삼별초 난 때 친척인 김수(金須)와 함께 진도에서 삼별초를 토벌하다가 전사하였다. 이같은 연고를 보면 무송유씨가 광주에 들어와 향리로 일했음직하다. 1879년 간행된 『광주읍지』는 광주 촌성 유씨의 본관을 무송으로 바꿔 썼다.
[현황]
『문헌비고』에 나와 있는 19개 유씨 본관은 2000년 인구 통계 때 무송과 광주 본관만이 남아 있다. 유씨의 전국 인구는 5,292가구 1만 6802명이고, 그 중 광산 본관은 1,411가구 4,241명이다. 2000년 당시 광주에만 34가구 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