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광주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84
한자 新幹會光州支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일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0월 29일연표보기 - 신간회 광주지회 설립
성격 민족운동 단체

[정의]

1927년 광주광역시에서 설립된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1927년 2월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반일사회단체인 신간회를 조직하여 합법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국적으로 149개의 지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중 광주에 설립된 지회이다.

[설립 목적]

신간회는 조선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과 조선 독립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1929년 7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허헌을 선출하는 문제로 신간회 광주지회 회원간의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1929년 9월 3일 임시대회가 열렸지만 정수태 등 반대파의 의견에 주도되어 신간회 본부의 입장을 지지했던 김시중 등이 퇴장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1929년 9월 30일 신간회 광주지회는 신간회 본부로부터 정권처분을 받았다. 여기에 광주지회장 정수태를 제명하고 총무간사 최종섭을 해임시켰으며 총무간사 한용수는 1년간 정권처분을 내렸다. 1930년 11월 19일 신간회 광주지회에 대한 정권처분을 해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7년 12월 13일 만주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가 중국 관헌의 박해를 받자 신간회 광주지회 부회장 정수태의 사회로 재만동포를 위한 시민대회 개최를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금지로 개최하지 못하였다.

1928년 9월 16일 신간회 본부의 지휘에 따라 관북지방에 대한 수재의연금을 수합하기 위해 '피해 동포의 구제를 권함'이라는 문서를 신간회 광주지회원들에게 배포하였다. 이에 대해 일제는 허가를 받지 않고 인쇄했다고 하여 배포를 금지하였다. 9월 28일에는 관북지방에 구제금품을 보내려고 했으나 일제에게 금지당하였다.

신간회 광주지회는 재난과 박해로부터 고통받는 민족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구제활동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가 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관련된 학생들이 대거 검거되었는데, 신간회 광주지회는 진상을 신간회 본부에 보고하였다. 그러자 11월 9일 신간회 본부에서 허헌, 김병로, 황상규 등을 조사단으로 파견하였다. 광주지회원인 장석천은 신간회 본부 조사단을 만나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허헌은 만세시위에 필요한 자금 제공을 약속하였고 11월 21일 자금을 제공하였다. 이후 장석천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서울 지역의 1차 만세시위를 중앙청년동맹원들과 계획하였다. 서울 지역 학생들의 시위 열기가 고조되면서 각 학교간의 연합시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광주지회의 활동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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