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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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獨立光州新聞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은진 |
창간 시기/일시 | 1919년 3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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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광주기독병원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로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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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연속 간행물 |
관련 인물 | 황상호|홍덕주|장호조 |
창간인 | 황상호 |
발행인 | 황상호 |
총호수 | 제4호 |
1919년 3.1운동 직후 광주와 전라남도에서 독립운동의 매개체로 사용된 신문.
『조선독립광주신문(朝鮮獨立光州新聞)』은 광주에서 있었던 3.10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민중 계몽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황상호(黃尙鎬)가 서울의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을 본따서 발행한 신문이다. 제4호까지 발행되었고, 주동자들은 징역을 언도받았다.
황상호 등 제중원 직원들은 광주 3.1운동을 준비하면서 서울에서 발행된 『조선독립신문』과 「2.8독립선언서」 등을 미리 접하고 있었고, 일제의 탄압을 극복하고 독립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광주와 전라남도에도 3.1운동의 필요성과 움직임을 알릴 매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조선독립광주신문』 1호는 9절지 크기의 종이 2장으로 만들어졌다.
『조선독립광주신문』은 제4호까지 간행되었다. 제1호의 경우 1면에는 서울에서 발행된 『조선독립신문』의 내용이 간추려 들어갔고, 2면에는 1919년 3월 10일 일어난 3.10만세운동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이밖에도 고종 독살설, 미국 월슨(Woodrow Wilson)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등이 포함되었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이후 제중원의 회계 직원이던 황상호와 간호사 홍덕주(洪德周), 약제사 장호조(張鎬祚) 등에 의해 제1호 300부가 제작되었다. 1호는 3월 13일 광주 큰 장[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교 부근], 광주시내, 제중원 등에서 배포되었다. 2호는 1919년 3월 18일 광주 큰 시장에서 지역민에게 배포되었다. 이후 황상호 등은 일제에 검거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장호조, 홍덕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광주에서 발행된 최초의 신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현재 원본은 1호만 보전되고 있는데, 이 원본이 1983년 전라남도 목포시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의 선교사 사택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조선독립광주신문』이 광주와 전라남도의 만세 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