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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3017
한자 李相栢
영어의미역 Yi Sangbae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은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성별
생년 1886년 8월 15일
몰년 1965년 9월 17일

[정의]

일제강점기의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상백(李相栢)은 1919년 3월 12일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인동교회의 목사로서 대구 서문외(西門外) 시장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3월 7일 이곳에 온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만나 독립선언서 20매를 전해받고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상백은 자기의 집에서 이영식, 이내성(李乃成), 이범성(李範成), 이영래(李榮來), 임점석(林點錫), 임용섭(林龍燮), 박명언(朴明彦), 권영해(權永海), 허도언(許道彦) 등과 다시 만나 3월 12일 오후 8시로 거사일을 정하고 사전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상백은 권용섭(權龍燮)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필사로 제작하고, 3월 11일에는 자기집에서 이영식, 이영래, 임점석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2일 오후 8시 마을 뒷산 기슭에 3백여 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이상백이영식과 교대로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조국이 곧 독립될 것이라는 사실과, 또 이를 앞당기기 위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한 후,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 날의 독립 만세 시위는 밤이 늦도록 전개되었는데,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주동자 8명이 체포되었다. 이상백은 이때 체포되었으며,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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