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실시된 계몽주의 교육. 교육사적 견지에서 근대교육이라 하면 중세의 봉건적 또는 도제식 교육 형식을 거쳐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말하며, 제도적으로는 공교육 체제 또는 의무 교육제가 나타난 것으로 18세기의 일이다. 한국의 경우는 근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880년대부터 1945...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던 개항기 사립 보통학교. 변해 가는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07년(순종 1)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고향에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라북도 금구군 서도면 상신리[현 금구면 서도리]에 교실 7칸짜리의 금구신명학교를 세우고, 학생 200여 명을 모아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
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금구현 북쪽 7리 낙양폐현’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금구면은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이었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금구현(金溝縣)이 되었다. 고려 때는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외향이라 해서 1170년(의종 24) 현령 치소로 승격되었으며, 거야현(巨野縣)과 낙양현(洛陽縣)을...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당월마을 뒤 묘고산에서 발원하여 두월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당월천이 발원하는 금구면 월전리는 원래 금구군 동면 지역인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월과 봉산, 동도면의 어전리를 합해서 당월과 어전의 이름을 따 금구면에 편입되었다. 월전리에는 어전·연동·봉산·당월의 4개 마을이 속한다. 봉산(鳳山)은 봉두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어전(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