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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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전자권이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되기 전 금구면의 실상을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긴 읍지. 금구면은 일제강점기까지 김제군의 군청소재지였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전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문화재들이 약탈되거나 소실되었다. 이에 금구면과 관련하여 남아 있는 문헌들과 전승 문화를 기록으로 보존함과 동시에 그 동안 금구면의 변화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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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항일 의병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우리고장 일제36년사』는 김제 지역의 항일 의병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2004년 김제문화원에서 간행하였다. 『우리고장 일제36년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고장 일제36년사』는 김제의 연혁과 행정구역을 비롯하여 제1장 역사적 배경, 제2장 왜구의 침략사, 제3장 조선조 때의 왜구 침략,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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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려시대 초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이때는 아직 왕권의 통치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 왕조는 1018(현종 9)에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 통치 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었지만, 특히 이때에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다시 중국식 한자명으로 고쳐진 것이다. 그 기준은 757년(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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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건축이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다. 김제시의 건축 유구(遺構)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의 특징에 걸맞게 삼국시대 축조된 수리 시설부터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유적이 벽골제이다. 이후 금산사가 창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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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삼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관해 비교적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벽골제 축조에 관한 기사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30년(흘해왕 21) 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시기 김제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으므로, 벽골제 축조는 330년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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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김제 지역 역사. 고려 전기는 실상 호족 시대의 후반기로, 왕조의 통치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항구적인 지방통치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제도가 시도되기는 하였지만, 이때 와서 모든 고을의 이름이 중국식 한자명으로 다시 바뀌었다. 바뀐 기준은 757년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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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전라북도 서부 평야권의 중심지에 위치한 김제시는 주변에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등 네 개의 시와 완주군, 부안군 등 두 개의 군이 인접해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김제시를 중심으로 여섯 개 노선의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주변 지역과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동쪽의 전주시·완주군과는 김제~금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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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면서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가 되어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구지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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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난 근세 실학의 대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은 근대 성리학자로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김제 지역의 학풍과 학통을 크게 형성한 대학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그 학문적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석정 이정직은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일명 여꾸다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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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원신과 김언공이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 지역에서 왜군을 궤멸시킨 전투. 일본은 명과의 강화가 결렬되자 1597년(선조 30) 1~2월에 14만5천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재차 조선을 침략하였다. 금구대첩(金溝大捷)의 목적은 직산전투에서 패퇴한 왜군이 정읍을 향하여 남주할 것을 예상하여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인 원신과 김언공(金彦恭)의 군사로 기습 공격을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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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제·금산·금천 등 이름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 금구군 동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길리·장교리·상학리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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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제·금산·금천 등 이름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 금구군 동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길리·장교리·상학리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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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김제·금산·금천 등 지명에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금구(金溝) 또한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나온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백제시대에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금구현(金溝縣), 조선시대에 전주속현 지역이었다.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되어 10개 면을 관할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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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던 개항기 사립 보통학교. 변해 가는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07년(순종 1)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고향에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라북도 금구군 서도면 상신리[현 금구면 서도리]에 교실 7칸짜리의 금구신명학교를 세우고, 학생 200여 명을 모아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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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을 시조로 하고, 온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온씨(溫氏)의 시조는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고, 금구온씨(金溝溫氏)는 온신(溫信)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온신의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며, 왕명으로 금구에 와서 살게 되면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제시 금구면의 옛 이름은 봉성(鳳城)으로, 금구온씨는 봉성온씨(鳳城溫氏)라고도 부른다. 온신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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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를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금구이씨(金溝李氏)의 시조는 이주(李澍)로, 금구는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인데 신라 때 금구가 되었다. 이주가 봉산군(鳳山君)[봉산은 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홍문관대제학을 지낸 시조 이주가 금구 지역에 낙향하면서 후손들이 이곳에 세거하게 되었다. 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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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동학농민운동가. 김덕명(金德明)의 본관은 언양(彦陽)이고, 초명은 준상(峻相), 호는 용계(龍溪)이다. 동학교문에서는 김필상(金弼相)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김한기(金漢驥)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며, 동생은 김인상(金寅相)이다. 장남은 김홍구(金洪九)이며 손자는 김병욱(金炳旭)이다.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다. 김덕명은 금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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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김제경찰서는 관내 치안 유지, 주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 등 사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5년 10월 21일 김제보안서를 국립경찰 김제경찰서로 개칭하였고, 1965년 12월 28일 김제읍 신풍동 141-2번지에 2층 청사를 신축하였다. 1973년 7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공덕면과 백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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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부터 199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가 멸망하면서벽골군은 757년(경덕왕 16) 중국식 한자명인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현으로 격하되었고, 1403년(태종 3) 김제현에 지군사[1466년 군수로 개칭]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670년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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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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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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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보건 의료 기관. 김제시 보건소는 질병 예방 활동, 예방 접종, 보건 민원 처리와 진료, 방문 보건 등의 사업 수행을 통해 시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3월 2일 「보건소법」 제정과 함께 김제군 보건소로 개소하였다. 1989년 1월 1일 김제시·군 보건소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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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는 항일투사 장태수의 생가. 남강정사(南崗精舍)는 일유재(一逌齋) 장태수(張泰秀)[1841~1910]의 생가로서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로 합병되자 단식으로 스스로 숨을 끊은 곳이다. 장태수는 1861년(철종 12) 21세 때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나갔다가 1875년(고종 12) 연로한 부친을 봉양하기 위하여 사직하고 고향인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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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일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교리·학성리·문명리·백마리 각 일부, 남면 신덕리·구호리·대하리·송내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산리라 하고 김제군 쌍감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쌍감면을 황산면으로 개칭함에 따라 김제군 황산면 남산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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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큰 길. 김제시를 통과하는 도로는 국도 4개 노선 총 69.62㎞, 지방도 8개 노선 총 117.60㎞, 시도 47개 노선 총 239.64㎞ 등이 있다. 국도 1호선은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까지 14.08㎞로 정읍~원평~전주를 연결하는 노선의 일부 구간이다. 국도 21호선은 김제시 공덕면 저산리에서 김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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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동진강휴게소와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장등마을을 잇는 다리. 동진대교가 놓인 동진강 하구에 있던 나루터는 옛날부터 부안과 김제를 잇는 연결 지점이었다. 부안 사람들이 전주나 서울 등으로 나들이할 때 동진나루를 건너 죽산(竹山)~내재역(內才驛)을 거쳐 김제, 금구 또는 이서를 지나 전주에 갔다. 마찬가지로 외지의 사람들이 부안을 찾을 때도 대부분 동진나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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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외세에 반대하고 탐관오리를 축출하기 위해 동학 남접(南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집회. 개항과 더불어 농촌 경제가 점점 파탄 지경에 달했고, 지방관과 토호들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한편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崔濟愚)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명으로 처형당하고, 동학교도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매우 힘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최제우 사후 최시형이 교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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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마을에서 귀신사 쪽으로 가면 구릿골 계곡의 옛길이 나온다. 좁은 계곡을 따라 바위가 드러나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듯한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한데, 샛길로 나 있는 흙길도 운치가 있어서 그냥 한없이 걷고 싶어진다. 끝없이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동곡마을에서 좁은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귀신사까지는 약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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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에 기초를 둔 반봉건·반외세 농민항쟁. 19세기는 순조·헌종·철종 등 어린 왕들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외척 세력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세도정치의 시기였다. 그로 인하여 중앙 정치는 문란해지고, 탐관오리는 백성들을 핍박했으며, 전정·군정·환곡 등의 폐단으로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경주 출신의 몰락 양반 최제우(崔濟愚)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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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는 옛 금구현 원평(院坪)으로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全琫準)[1855~1895]과 김덕명(金德明)[1845~1895]이 이끈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자, 원평집회와 최후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 원평·구미란(龜尾卵) 전투가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사의 중요 무대이다. 금구 출신의 김덕명 장군은 당시 동학 남접으로 전봉준과 함께 가장 치열하게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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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경령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고려시대에 만경(萬頃)을 식읍지로 하사받았다. 만경은 백제 때는 두내산현(豆乃山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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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박필현을 비롯한 소론과 남인이 영조의 집권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의 일부 세력과 남인의 과격 세력이 연합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 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역에서는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1680~1728]이 가세하였다. 박필현은 수천군을 영솔하고 전주성을 습격하려고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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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행해지는 제반 활동. 보건의료는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 사항으로 교육, 문화 등과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적 영역은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며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 보건과 보건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간 영역은 사설 의료 기관이 주가 되며 대학 병원과 의원을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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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 말기 금구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금구 읍내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였다. 양정·만복·구호·신덕·대하·송내·평산·등용·주자·화암·하봉·용반·유산·소정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서면 신정·우산·성리·수월·회정·중리·도장 등 7개 리, 일북면 봉강리·덕조리 각 일부, 초처면 내광리·성덕리·유덕리 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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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삼현서원(三賢書院)은 강승(姜昇)[1430~1500]·김시습(金時習)[1435~1493]·남효온(南孝溫)[1454~1492]을 배향하고 있다. 주벽으로 모신 강승은 『김제군선생안』에 등재되어 있는 인물로 김제군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매월당 김시습은 생육신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글을 남겼는데, 소설 『금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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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고대로부터 일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자연적·인공적 외부 침략에 대비하며 스스로 거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해 왔다. 성곽이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전통 건조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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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김제 지역에서는 1866년에 일어난 병인교란 때 순교자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1879년에는 드게트(Deguette) 신부가 금구의 배재에서 잡혀 추방되었다가 1881년 뭬렐 신부와 함께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한때 금구에 피신했다고 전한다. 1894년 동학혁명 이후 가톨릭 선교가 용인되자 말세로구 신부가 전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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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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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대대로 세거한 성씨. 김제 지역에 대대로 세거해 온 성씨로는 김제조씨, 만경김씨, 만경노씨, 금구온씨, 금구이씨 등이 있다. 시조 조연벽(趙連壁)은 고려 고종 때 벽성군에 봉해졌다. 벽성은 김제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후손들이 김제를 본관으로 삼았다. 조필달(趙必達)은 포도대장, 양주목사, 훈련원도정 등을 역임하였다. 김제조씨의 집성촌은 김제시 교동과 죽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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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1890년대 호남에는 3개의 성당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귀의시켰다. 되재본당[전라북도 완주 화산], 나바위본당[당시 익산군 망정면 화성리], 수류본당[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화율리]이 바로 그곳이다. 수류성당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 가장 많은 신부를 배출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류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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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신경은의 정려비. 신경은 정려비는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84번지에 있다. 금산면 낙수동 삼거리에서 금구 방면으로 가는 길을 따라 1.75㎞ 더 가면 길 오른쪽에 큰 돌에다 반곡[서릿골]이라 새겨놓은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어 500m 들어가면 반곡마을회관이 나오는데, 더 직진하여 은적사를 거쳐 반곡제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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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와 신덕동을 잇는 다리. 신덕교는 길이 48m, 폭 10m, 높이 4m이고, 경간 수 3, 상부 RCS형 구조, 하부 SGP형 구조, 설계 하중 DB-18이다. 2009년 현재 교통량은 7,758회이다. 월촌동사무소에서 화호로 가는 구도로를 따라 3.2㎞ 가면 옛날 제1신덕교가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제1신덕교, 제2신덕교가 있었는데, 1989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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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윤과 송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송씨(宋氏)의 원시조는 중국 춘추시대의 왕세손 3자인 송주은(宋柱恩)이다.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송주은의 11세손이라고 전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시조의 4세손 송송례(宋松禮)가 상장군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하사받았는데, 여량(礪良)은 여산(礪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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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김제시의 변천 과정.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과, 남쪽으로는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 및 부안군과, 북쪽으로는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인접하며,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있다. 김제의 자연환경을 보면 동부에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높이 500~700m의 산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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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일대에 있는 광산. 모악산을 이루고 있는 엽리상 화강암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금구면 선암리 등지에 석금(石金)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다. 현재 채굴하고 있는 금광은 모두 사금광으로, 엽리상 화강암의 풍화물이 하천에 의해 이동·퇴적하면서 집적된 충적층 하부와 기반암 또는 플라이스토세 접촉부에 사금이 포함되어 있다. 모악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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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으로 귀향 온 금구온씨의 시조. 본관은 금구(金溝).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다. 아버지는 고려 충목왕 때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온수(溫粹)이고, 형은 온선(溫善)이다. 온신(溫信)은 1366년(공민왕 15) 12월에 당시 권신이었던 신돈(辛旽)의 전횡을 논죄하기 위해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와 함께 신돈을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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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은리의 ‘용’자와 금마리의 ‘마’자를 따서 용마리(龍馬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은리·금마리·두월리·옥성리 각 일부, 일북면 대흥리 일부, 서도면 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마리라 하고 김제군 쌍감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쌍감면이 황산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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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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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용신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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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원불교 요양원.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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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원불교 요양원.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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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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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의 전투.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거한 뒤 조선 정부가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군을 끌어들이자 동학농민군은 척왜(斥倭)를 부르짖으면서 1894년 9월에 다시 일어나 북진하였다. 10월 하순에 주력부대는 논산에서 합세한 다음 공주를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농민군의 논산 집결 소식이 정부에 보고되자 관군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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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전라도 최초의 본당은 금구의 배재[현재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었다. 본당은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신부가 일정한 곳에 상주하면서 관할 구역의 공동체를 사목하는 교회 단위를 말한다. 한국의 성당은 오랫동안 본당이 없이 공소로만 운영되었다. 공소는 본당보다 적은 단위로써 신부가 주재하지 못하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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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원평터미널은 1973년 3월 전라북도 김제시와 금산면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건립되었다. 1973년 3월 건립된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원평터미널로 진입하는 도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비포장도로였으나, 2002년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원평터미널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하였다. 원평터미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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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육송사(六松祠)는 본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살고 있는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집안 사당으로 창건된 것이어서 육송사에 모셔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언양김씨이다. 당초 배향되었던 송씨 3형제[송정기(宋廷耆)·송정구(宋廷耈)·송정모(宋廷模)]가 제외되고, 현재는 묵제 김관(金瓘)[1425~1485]을 중심으로 용암 김승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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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어머니를 둔 집권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의종 말기에 산원(散員)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를 지냈다. 1170년(의종 24) 보현원(普賢院)에서 대장군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 등과 무인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뒤 응양용호군(鷹揚龍虎軍)의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이의방은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하여 전주의 영현으로 있던 금구(金溝)를 현(縣)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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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는 인동장씨 동성마을.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한다. 장금용의 선조는 태사공 장정필(張貞弼)로 인동(仁同)의 노전에서 강학(講學)을 했고, 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장금용은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을 지냈다. 입향조 장기건(張紀乾)은 장금용의 14세손으로 조산대부로 진안현감을 지냈고,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있다가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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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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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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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초기에는 왜군의 일방적인 북상이 계속되었다. 풍부한 전쟁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대규모 왜군은 당일에 부산성을 점령하고, 계속 북상하여 같은 해 5월 2일에 한양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침공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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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 아버지는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이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1570년(선조 3)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각별한 후원과 촉망을 받았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이 되었고, 1585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본래 서인이었으나 이이를 버리고 박순(朴淳)·성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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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일제강점기 전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김제의 역사. 조선시대 지방 통치제도는 이미 태종 대[1400~1418년]에 대개 확립되었고, 세조 대[1455~1468]에 일부가 개정되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었다. 김제 지역에는 조선시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1403년(태종 3)에 김제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415년(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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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복행(福行), 휘(諱)는 환복(煥福). 아버지는 조익성(趙翊成)이다. 조환용(趙煥容)은 18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납세 물품을 납세자들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데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하는 군현민은 그나마 고통이 덜하지만 김제와 금구, 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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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에서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714호선은 총 연장 51㎞로 미포장도 9.9㎞, 미개통도 6.8㎞, 2차선 31.1㎞, 4차선 3.2㎞이다. 김제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금구면·황산면·봉남면·금산면 등을 ‘ㄷ’자형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 지역은 모악산도립공원을 중심으로 산지를 이루는 곳이라 비교적 교통이 불편하다. 김제시의 동남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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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광악의 정려. 최광악(崔光岳)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용와(龍窩)이다. 만육 최양(崔瀁)의 13세손이다. 최광악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깨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 리 밖에 있을 때 어머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밤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의원에게 약을 지어 회복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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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 유교를 국시를 삼은 조선시대에서는 행동 강령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강(三剛), 특히 군신과 부자와 부부 관계의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충(忠)·효(孝)·열(烈)을 장려하고 두드러진 행적이 있는 사람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올려 백성들의 사표로 삼았으며, 또 정려를 내려서 마을 입구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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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에 있던 태인경씨 동성마을. 태인경씨(泰仁景氏)는 경차(景磋)를 시조로 하고 경극중(景克中)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경차는 고려시대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지냈고 태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경극중은 경여송의 13세손으로 성종 때 청안현감을 지낸 뒤 1630년경(인조 8)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 당월마을에 정착하였다. 이후로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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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과 철도 터미널.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과 철도 터미널은 운송업이라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시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김제시의 버스 터미널로는 김제고속버스터미널, 김제시외버스터미널, 원평터미널, 만경터미널 등이 있다. 철도 터미널로는 김제역, 부용역, 와룡역이 있으나 현재 부용역과 와룡역은 여객 터미널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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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의 하우스 감자 농사는 11월 중후반에 시작해서 이듬해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하우스 감자의 성공으로 8월 15일에 있던 ‘광활면민의 날’ 행사가 감자 수확기인 4월 10일로 옮겼고, 명칭도 ‘광활햇감자축제’로 바뀌었다. “맨 처음 [하우스 감자를] 광활서 시작한 것은 임인식이여. 그 사람이 맨 처음에 시작혔어. 그 전에는 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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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마을에는 정여립에 관한 이야기와 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많다. 마을 앞산인 제비산(帝妃山) 아래에는 정여립이 살았던 집터와 그가 천일기도를 올리며 수행했다는 치마바위가 있다. 조선 전기 사람인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자는 인백(仁伯)이고, 본관은 동래(東萊)로 전주 출신이다. 그에 관한 자료는 구술로만 무성하게 전할 뿐, 행적을 적은 기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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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리농림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화랑회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벌이려던 사건.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투쟁은 광주학생운동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나타났고, 일제 패망이 임박하여 조선인의 독립 투쟁에 대한 폭압적인 탄압이 계속되었음에도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투쟁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에서 결성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