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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61
한자 鄭允弘
영어음역 Jang Hongha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송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봉계
묘소|단소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서산(瑞山)

[정의]

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서산(瑞山). 중국 송나라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있다가 원나라의 건국과 함께 고려로 추방된 정신보(鄭臣保)와 정인경(鄭仁卿)으로 가계의 이어지는 후손이다. 직계 선조인 정인보는 고려에서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상장군이 되고 서산군(瑞山君)에 봉군되었다. 아버지는 정인경의 4세손인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정숙(鄭璹)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슬하에 정사인(鄭斯仁), 정사의(鄭斯義), 정사예(鄭斯禮), 정사지(鄭斯智), 정사신(鄭斯信) 등 다섯 아들을 두었다. 정사신은 문과에 급제해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에 올랐다.

[활동 사항]

정윤홍(鄭允弘)은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태어났다. 군기부정(軍器副正)을 지내고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고려의 국운이 다함을 한탄하며 백귀선(白貴旋), 김효신(金孝信)과 더불어 김산으로 은거지를 정하고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1373년(공민왕 22) 김천시 봉산면 봉계[현 봉산면 신리]로 은거하였다. 다섯 형제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을 인의리(仁義里), 예지리(禮智里), 신리(信里)라 하였다.

[묘소]

묘소는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속칭 분통골에 있다. 명당으로 알려진 묘소의 위치와 관련하여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는데 정윤홍이 유언으로 관을 여러 개 묻으라고 하였는데 후손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훗날 파묘(破墓)의 화가 미쳤고 이때 무덤 속에서 학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유언을 따르지 않아 명당이 훼손되었음을 한탄하며 묘지가 있는 산을 분통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정윤홍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켰다 하여 백귀선, 김효신과 더불어 김산삼절(金山三節)이라 일컬어진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5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고려의 국운이 다함을 한탄하며 백귀선(白基旋), 김효신(金孝信)과 더불어 ->고려의 국운이 다함을 한탄하며 백귀선(白貴旋), 김효신(金孝信)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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