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1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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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楮子島祈雨祭壇址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승모 |
[정의]
조선 시대에 저자도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터.
[개설]
조선 시대에는 한발이 들 경우 비가 올 때까지 12차에 걸쳐 기우제를 행했는데, 그 중 2차와 7차를 저자도와 용산강에서 동시에 거행하였다. 2차 때는 재신(宰臣)이, 7차 때는 중신(重臣)인 정2품 당상관이 제관으로 참석하였다.
[위치]
저자도가 섬으로 존재하던 당시의 위치로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한강물 밑에 잠겨 있다.
[형태]
저자도 기우제단에서 행하던 유교풍 기우제는 1667년[현종 8]에 기우단이란 제단을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의례]
기우제의 차례는 1704년(숙종 30)에 개정(改定)되었는데, 저자도 기우제와 관련해서는 용산강과 함께 두 번째와 일곱 번째로 지낸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기우제 차례가 착란(錯亂)되어 이를 바로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기우제등록(祈雨祭謄錄)』 기사에 따르면 1639년(인조 17) 5월 24일에 있었던 저자도 기우제 때 제관을 맡은 대신이 전사관(典祀官) 겸 대축(大祝)과 함께 제물을 가지고 오고 집사관(執事官)은 기우제 부근에서 마련한 희생(犧牲)으로 제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저자도 기우제는 조선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