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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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樓亭 |
영어의미역 | Pavilion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용만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지어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누각이나 정자.
[개설]
누정은 전통시대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정(亭)·각(閣)·당(堂)·정사(精舍)·대(臺)·원(院)·헌(軒)·재(齋)·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데, 누·대·정 등은 유관(遊觀)의 공간에, 객사·각·원 등은 공공건물에, 헌·당·재·와 등은 개인의 거처에, 암(庵)·정사 등은 서원이나 사찰의 부속 건물에 주로 사용되었다.
어떠한 명칭이 붙든지 누정은 기숙을 위한 일반 가옥과는 달리 마루의 기능성이 강조되었다. 누정은 곧 마루 중심의 개방적 속성을 지닌 공간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수양과 한적(閑寂)의 공간이자 동류들과 어울리는 교유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적과 학문을 위한 공간적 특성상 대부분의 누정은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할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현황]
음성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누정은 경호정(景湖亭)과 충효정(忠孝亭), 백련서재(白蓮書齋) 등이다. 원남면 보천리 응봉 아래의 난정(蘭亭)과 삼성면 덕정리에 있던 풍락정(豊樂亭) 등은 지금 그 자취를 알 수 없다. 경호정은 1934년 당시 군수인 권종원이 창건하여 연풍정이라 하였는데, 그뒤 군수 민찬식이 경호정이라 이름을 고쳤다.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충효정은 약 3백 년 전 세워졌을 당시에는 피금정(披襟亭)이라 불렸으나 1990년에 다시 세우며 충효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백련서재는 조선 후기인 숙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암(恕庵) 신후재(申厚載)가 만년에 감곡면 오궁리에 은거할 당시 서재로서 쓰던 누정이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백련근(白蓮根)을 심으면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