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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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 |
영어의미역 | Virtuous Woma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개설]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인 중요성을 강화해갔다.
[유형]
열녀의 유형에는 남편이 죽자 자결하는 자진(自盡) 유형과 남편이 죽은 후 수절하며 시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잘 키워 집안을 이루는 수절(守節) 유형이 있다.
1. 자진(自盡) 유형
박순(朴淳) 처 임씨(林氏)는 고려 때의 대사헌(大司憲) 임헌(任獻)의 딸이다. 함흥차사(咸興差使)로 내려간 남편 박순이 죽어 돌아오지 못하자 자결하였다. 태종이 이 소식을 듣고 묘지를 하사하였는데, 묘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성석동에 있다. 태종이 내린 열녀문은 고향에 세워졌다가 음성박씨 일가가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로 옮겨 살게 되면서 열녀문도 그곳에 다시 세워졌다.
장동엽(張東曄) 처 이씨(李氏)는 이정주(李鼎周)의 딸로 본관은 청주이다. 26세 때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치른 후 자결하였다. 1892년(고종 29)에 열녀문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경립(李敬立)의 처 안씨(安氏)는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치루고 25세에 자결하였다.
김선경(金善慶) 처 이씨(李氏)은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 이휘(李煇)의 딸로 생극면 임곡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자감(軍資監) 판관(判官)으로 있던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고, 딸을 데리고 피난하다 차평리 통산 밑에서 왜적과 맞닥뜨렸는데, 왜군에게 희롱당하다 하진민이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났으나 곧 자결하였다. 영조 18년(1742)에 정려되었다.
권종원(權鐘源) 처 정씨(鄭氏)는 남편이 죽자 뒤따라 자결하였다. 고종 때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다. 윤득성(尹得聖) 처 김씨(金氏)는 19세에 남편이 질병을 얻어 위독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세상을 뜨자 상을 마치고 유복자를 낳은 뒤 음식을 먹지 않고 있다 이틀만에 자결하였다.
이포장(李圃章) 처 이씨(李氏)는 시집가서 1년만에 남편이 병으로 죽자 새끼줄로 목매어 죽었다. 서효순 처 김씨는 김상하의 딸로 본관은 안동이다. 남편이 일찍 죽으니 장례를 치르고 시부모를 위로하고는 저녁에 침실로 들어가 목매어 죽었다. 반창순(潘昌淳) 처 김씨(金氏)는 남편이 병이 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소생했다. 후에 남편이 죽으니 10일간 단식하다 죽었다.
2. 수절(守節) 유형
신석두(申錫斗) 처 이씨(李氏)는 이광빈의 딸로 본관은 담양이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시어머니에 효도를 다했으며 정성으로 제사를 모셨다.
장동민(張東旼) 처 김씨(金氏)는 김봉학의 딸로 본관은 경주이다. 16세에 시집 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90세 가까운 시부모를 정성껏 간호했다.
김응현(金應鉉) 처 정씨(丁氏)는 정약림의 딸로 본관은 나주이다. 나이 16세에 남편이 병이 나자 피를 받아 먹여 사흘을 연명케 했으나 끝내 죽었다. 늙은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했다.
이석주(李錫柱) 처 이씨(李氏)는 이대열의 딸로 본관은 전주이다. 18세에 시집 와 1년만에 남편이 죽었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전처의 어린 아들이 있어 가난을 무릅쓰고 잘 가르쳐서 집안을 계승시켰다.
성인하(成仁夏) 처 권씨(權氏)는 본관이 안동이다. 남편이 죽자 정절을 지켰으므로 비를 세웠다.
남석기(南錫驥) 처 고씨(高氏)는 고형진의 딸로 본관은 청주이다. 17세에 시집가서 몇 달 안가 남편이 병이 나서 피를 받아 먹여 10일을 연명시켰다. 시어머니의 병에도 피를 먹여 10일을 연명시켰다. 이웃에 정조를 노리는 자가 있어 장도를 품고 수절하였다.
김지영(金智榮) 처 이씨(李氏)는 이군순의 딸로 본관은 전의이다. 일찍이 남편이 죽자 70이 넘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여덟 달 된 어린애를 잘 길러서 가문을 이루었다.
엄정섭(嚴貞燮) 처 이씨(李氏)는 이해상의 딸로 본관은 전주이다. 나이 24세에 남편이 병이 나자 손가락을 돌로 찌었으나 피가 나오지 않자 이로 물어뜯어서 피를 내어 3개월을 연명하였다. 어린 아들을 잘 길러 집안을 이룩하였다.
구덕자(具德滋) 처 조씨(趙氏)는 출가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시어머니를 평생 봉양하여 음성향교에서 표창하고 사림에서 효열비를 세웠다.
[유적]
음성 지역에는 열녀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우선 음성군 음성읍에는 삼생리의 장동엽(張東曄) 처 청주이씨(淸州李氏) 열녀비, 평곡리의 이경립(李敬立) 처 순흥안씨(順興安氏) 열녀문이 있다. 청주이씨 정문은 1892년에 정려되어 세워진 것으로, 장석영 효자문과 장수황씨 효부문과 함께 있다. 이경립의 처 순흥안씨는 선조 대의 인물로 숙종 대에 열녀 정려가 세워졌고, 지금의 비각은 1903년 개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는 조용하(趙用夏) 처 평택임씨(平澤林氏) 열녀문이 있다. 평택임씨는 고종 대의 인물로 남편인 조용하와 함께 정문이 내려져 효열쌍정문(孝烈雙旌門)이라 부르고 있다. 대소면 오류리에는 박순(朴淳) 처 장흥임씨(長興林氏) 열녀문이 있다. 순조 때에 재건하였다가 이후 쇠락하여 1997년 다시 세웠다. 생극면 차평리에는 김선경(金善慶) 처 성주이씨(星州李氏) 열녀문이 있다.
삼성면 용성리에는 권종원(權鐘源) 처 진주정씨(晉州鄭氏) 열녀문이 있다. 고종 때 열녀의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감곡면 문촌리에는 윤득성(尹得聖) 처 청풍김씨(淸風金氏) 열녀문이 있다. 영조 대에 열녀로 포상되었고, 정조 대에 정문을 세웠다. 같은 건물에 윤기선 형제의 효자문이 있다.
원남면 문암리에는 곡산연문(谷山延門) 효열각(孝烈閣)이 있다. 이곳에는 1796년(정조 20)에 세워졌던 연진행(延震行)의 처 순흥안씨(順興安氏) 열녀각, 1916년에 세워진 연재관(延載寬) 처 청송심씨(靑松沈氏) 정려, 그리고 효자였던 연사종(延嗣宗) 정려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