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인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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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한강인도교의 1950년대 모습을 그린 박득순의 풍경화. 1950년대 한국미술계에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주도하며 사실주의와 아카데믹한 화풍을 보였던 박득순(朴得錞)[1910~1990]이 1956년에 한강인도교의 풍경을 유채화로 그린 작품이다. 「한강인도교」는 캔버스 위에 유채물감으로 그렸으며, 작품 크기는 51.3㎝[세로]×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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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군사정변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한강인도교에서의 총격사건. 1961년 5월 16일 발생한 군사정변은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정권 시대를 연 사건이었다. 박정희 소장을 필두로 김종필 등 일부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이 사건은 몇 가지 측면에서 그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국내적 측면으로서 4·19혁명 이후 조성된 정치·사회적 정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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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까지 서울특별시 동작구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8일 오전 11시 30분,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만에 서울 시내에 진입하였다. 국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지연시키기 위해 한강 전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한강 이남인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일대[당시 영등포구]는 국군과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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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있는 주요 도로, 철도 및 교통수단과 관련 시설. 동작구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교량으로 인해 한강 이북과 교통이 원활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동작구 내외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여 주는 도로와 지하철 등이 있어 동작구와 인접한 지역 간의 교통 편의가 더욱 향상되었다. 동작구의 노량진은 한강 남쪽의 나루로는 규모가 가장 크고 교통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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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남부에 있는 자치구. 동작구는 한강 이남 지역 중 서울에 가장 일찍 편입된 지역 중 한 곳이다. 동작구가 서울에 편입되었던 1936년에는 경성부 영등포출장소 소속이었으며 이후 관악구 관할 시기를 거쳐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서울의 17번째 구로 개설되어 현재에 이른다. 동작구의 수리적 위치는 북위 37°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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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을 지나는 한강에 있던 나루터. 동재기나루는 조선 시대 서울에서 과천, 수원, 평택을 거쳐 호남으로 내려가거나, 반대로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였다. ‘동재기’는 흑석동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 일대에 검붉은 구릿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이 분포해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한자명으로는 동작진(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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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부터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적용되기 시작한 경성시가지계획의 내용과 실재 경성부는 1936년 3월 26일 고시된 「경성시가지계획구역」에 따라 1읍 8면 71개리 및 5개리 일부를 편입하여 이른바 ‘대경성’이 되었다. 종전 36.18㎢의 약 3.64배인 133.9㎢에 달하는 행정구역 확장은 이후 진행될 경성시가지계획의 적용 범위와 실재 행정구역을 일치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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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의 끝자락이었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이 1963년 행정구역 확장 이후 서울의 한복판이 되어가기까지의 과정. 영등포 일대가 서울의 일부가 된 것은 1936년 4월 1일 당시 경성부의 부역 확장, 일명 ‘대경성’이 실현되면서였다. 이 확장으로 1읍[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 8면[경기도 고양군 용강면·연희면·은평면·한지면, 경기도 시흥군 북면·동면,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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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동작구(銅雀區)는 동쪽으로 서초구, 서쪽으로 영등포구, 남쪽으로 관악구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한강 건너 용산구 및 영등포구 여의도와 마주한다. 동작구는 조선 시대 동작진(銅雀津)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동작구는 일찍이 서울특별시의 관문인 노들나루를 중심으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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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의 지리적, 사회적 특성 등으로 예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자연마을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을 의미하며,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던 자연마을은 대략 37개 정도가 확인된다. 동작구는 한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은 생활공간이 되었으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자연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는 자연마을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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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초기 한강방어전투의 전개 및 전후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복구 과정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면 남침을 단행한 북한군은 3일만인 28일 새벽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 시내로 진입했다. 북한군이 전차를 앞세워 미아리방어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전달 받은 육군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의 폭파를 지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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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과 용산구 이촌동을 연결하는 다리. 한강대교(漢江大橋)는 서울 도심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인도교이고 노들섬을 관통하는 다리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되거나 1950년 6·25전쟁 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 전략상 폭파되고 다시 복구되는 등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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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불법남침과 6월 28일 서울점령 이후 남진하려는 북한군의 한강도하를 38선 지역에서 후퇴한 국군이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의 한강대교 남안에서 학도의용군 및 일반인들의 도움을 받아 수행한 방어전투로 다수의 무명용사들이 전사한 기념지. 한강 유역은 고대로부터 인마(人馬)의 교통로로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운송로로서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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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에 있는 한강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1929년 용산기자단이 건립한 위령비. 대한제국기부터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까지 한강에서는 여러 번의 큰 교량 공사가 있어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이 실족하여 익사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여기에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특히 많은 익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1922년 경부터 매년 7월 익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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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 신타로가 1912년 10월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건립한 신사. 한강신사는 일제 강점기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던 신사이다. 설립 초기 한강신사의 제일(祭日)은 5월 4일과 11월 3일이었고, 제신(祭神)은 셋으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管原道眞][845-903], 미야지다케 다이진구[宮地岳太神宮], 고토히라 다이진구[琴平太神宮]였다.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