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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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次寧國洞幽居韻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구본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45년 - 「차영국동유거운」 저자 유희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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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차영국동유거운」 저자 유희경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07년 - 「차영국동유거운」이 수록된 『촌은집』 간행 |
배경 지역 | 도봉산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유희경 |
[정의]
조선 시대 유희경이 도봉산 영국동의 거처를 두고 지은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차영국동유거운(次寧國洞幽居韻)」은 도봉산과 인연이 깊은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 도봉산에서의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읊고 있는 한시이다. 「차영국동유거운」은 유희경의 시문집 『촌은집(村隱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유희경의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 본관은 강화(江華)이다. 가계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데, 허균(許筠)[1569~1618]의 『성수시화(惺叟詩話)』에 따르면 그가 천인 신분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남언경(南彦經)에게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상례에 특히 밝았으며, 박순(朴淳)[1523~1589]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다. 1573년에는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을 도와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위한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는 한시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하였는데, 자기 집 뒤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 하고, 그곳에서 이름 있는 문인들과 시로써 화답하였다. 저서로 『촌은집』 3권과 『상례초(喪禮抄)』가 전한다.
[구성]
「차영국동유거운」은 4구로 구성된 칠언 절구로 안짝[제1구와 제2구]에서는 시인 자신의 일상에 대해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고, 바깥짝[제3구와 제4구]에서는 이웃 노인의 무례함을 들어 상대적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있다.
[내용]
모자만결연하리(茅茨晩結烟霞裏)[저녁에는 띳집을 얽어매니 안갯속이요]
주엄시비불출기(晝掩柴扉不出歧)[낮에는 사립문 닫고서 나가지 않는다네]
인수미증지예의(鄰叟未曾知禮義)[이웃 노인은 일찍이 예의를 알지 못하여]
격리호아노경사(隔籬呼我老經師)[담 너머로 나를 노경사(老經師)라 부르네]
[특징]
평기식(平起式)으로, 제2구의 ‘기(岐)’와 제4구의 ‘사(師)’를 운자로 쓴 칠언 절구이며, 평성 지운(支韻)으로 압운하였다.
[의의와 평가]
「차영국동유거운」은 다른 사람이 유희경의 영국동(寧國洞) 유거(幽居)를 두고 지은 시에 차운해 쓴 것이다. 유희경은 「영국동」이라는 또 다른 시를 창작하였데, 「차영국동유거운」과는 운자가 서로 달라 스스로의 시에 차운한 것은 아닌 듯하다. 제1구와 제2구에서는 영국동 유거에서의 유희경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차영국동유거운」에서 주목할 곳은 제3구와 제4구이다. 여기에서는 예의도 알지 못하는 노인과 함께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자조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자존감이 강함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