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663 |
---|---|
한자 | 李炯基 |
분야 | 역사/근현대,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여진 |
[정의]
만년에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살았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활동 사항]
이형기(李炯基)[1933~2005]는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에서 1933년 1월 6일에 태어났다. 1949년 12월에 17세의 중학생으로 『문예(文藝)』지에 시 「비 오는 날」로 추천을 받고, 1950년 4월과 6월에 「코스모스」와 「강가에서」 등이 서정주와 모윤숙에게 세 번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였다. 등단 완료 당시 이형기는 진주 농림 학교의 학생으로 최연소로 등단한 17세의 중학생 시인이라 하여 주목을 받았다. 1955년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등단 후에 발표한 시집으로는 『적막강산』[모음 출판사, 1963], 『돌베개의 시』[문원사, 1971], 『꿈꾸는 한발』[창조사, 1975], 『풍선심장』[문학 예술사, 1981], 『보물섬의 지도』[서문당, 1985], 『심야의 일기예보』[문학 아카데미, 1990], 『죽지 않는 도시』[고려원, 1994], 『절벽』[문학 세계사, 1998] 등이 있다. 초기에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서정을 절제 있는 언어로 형상화하였으나 점차로 모더니스트적인 기법을 구사하여 서정을 지적으로 세련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이형기는 사물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토대로 존재론적 진실을 추구하는 시들을 썼다.
1962년에 『현대 문학』에 평론 「상식적 문학론」을 연재하면서 평론 작업을 전개하였으며, 1960년대에 순수·참여 문학 논쟁에 참여하고, 『현대 문학』에서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과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감성의 논리』[문학과 지성사, 1976], 『한국 문학의 반성』[1980], 『시와 언어』[문학과 지성사, 1987] 등의 시론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또 이형기는 뛰어난 시와 활발한 활동을 바탕으로 1957년에는 제2회 한국 문학가 협회상을 받았으며, 문교부 문예상[1966], 한국 시인 협회상[1978], 한국 문학 작가상[1982], 부산시 문화상[1983], 대한민국 문학상[1990] 등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부터 2년 동안은 한국 시인 협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이형기는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연합 신문』·『동양 통신』·『서울 신문』 기자, 『대한 일보』 정치 부장·문화 부장, 『국제 신문』 논설위원·편집국장 등을 지낸 언론인이었다. 또 부산 산업 대학교와 모교인 동국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2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학자이기도 하였다. 언론인으로서 보여준 비판적 시각과 날카로운 정신은 그가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과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준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러한 성향은 시 작품에서의 날카로운 이미지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강한 표현, 온건함을 배제한 강인한 시 정신에서도 나타난다.
만년에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거주하였으며, 1994년에 뇌졸중으로 인한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아내 조은숙 씨의 대필로 시 창작을 하여 시집 『절벽』[1998]을 출판하는 등 시혼을 불태웠다. 2005년 2월 2일에 타계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 시인 협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저술 및 작품]
이형기가 등단 후에 가장 먼저 간행한 시집은 이형기·김관식·이중로의 3인 시집인 『해 넘어 가기 전의 기도』[현대 문학사, 1995]이다. 이 합동 시집에 실린 모든 시는 첫 개인 시집인 『적막강산』에 모두 재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집은 『적막강산』[모음 출판사, 1963], 『돌베개의 시』[문원사, 1971], 『꿈꾸는 한발』[창조사, 1975], 『풍선 심장』[문학 예술사, 1981], 『보물섬의 지도』[서문당, 1985], 『심야의 일기예보』[문학 아카데미, 1990], 『죽지 않는 도시』[고려원, 1994], 『절벽』[문학 세계사, 1998] 등 총 8권이다.
이형기는 1950년대에 청록파의 계보를 잇는 전통적 서정시를 투명하고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1960년대에는 평론 쪽에 기울어졌는데, 셰스토프·오스카 와일드·코바야시[小林秀雄] 등의 영향을 받아 반합리주의·반역사주의·예술 지상주의의 입장에서 문학의 공리성을 배격하고 예술성을 옹호하였다. 이 시기에 내놓은 제2시집 『돌베개의 시(詩)』에는 원시적인 생명을 이미지스트의 수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모색이 나타나 있다.
1970년대 이후의 시기에 내놓은 『꿈꾸는 한발』, 『풍선 심장』, 『보물섬의 지도』 등의 시집에서는 격렬한 탐미성을 드러내 보이며 존재의 허무를 표면화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자의식의 반응을 날카롭게 돌출시키는 시를 창작하였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형기는 다시 한 차례 변모를 겪으며 안정을 되찾는다. 그 안정은 대체로 세계의 허망함을 한 발자국 비켜선 자리에서 관찰하는 심적 여유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의 시인의 언어는 충격과 폭력의 방식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고, 세계의 공포를 다소 냉정하게 바라보며 그를 담담하게 수용하는 차분함을 띤다.
이형기는 시집 외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무』[2000] 등의 아포리즘을 담은 책과 수필집 『서서 흐르는 강물』, 『바람으로 만든 조약돌』[1986], 박목월 평전인 『자하산 청노루』[문학 세계사, 2006], 평론집 『감성의 논리』[문학과 지성사, 1976], 『한국 문학의 반성』[1980], 『시와 언어』[문학과 지성사, 1987]를 발간하였다.
[묘소]
이형기는 2005년 2월 2일에 타계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 시인 협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천주교 납골 묘원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진주시에서는 2008년부터 이형기 문학제가 개최되며, 이형기 문학상도 마련하여 수상하고 있다. 또한 신안동 공원에 이형기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인 「낙화」 시비를 세워 이형기의 문학 세계와 시 정신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