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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69
한자 趙明謙
이칭/별칭 백익(伯益)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기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조명겸 생
활동 시기/일시 1723년 - 조명겸 식년시 급제
묘소|단소 조명겸 묘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임천(林川)
대표 관직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익(伯益)으로 임천 조씨(林川趙氏) 19세손이다. 회덕 현감(懷德縣監)을 지낸 조정강(趙正綱)의 1남 2녀 가운데 장남이다. 첫 번째 부인은 청송 심씨(靑松沈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영월 신씨(寧越辛氏)이다. 송시열(宋時烈)도봉 서원 출향(黜享)을 반대했던 심정관(沈廷觀)이 처남이다. 자녀는 2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조명겸(趙明謙)은 37세가 되던 1723년(경종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727년(영조 3)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정언(正言), 지평(持平), 교리(校理) 등을 거쳐 대사간(大司諫), 병조 참판,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역임했으며 외직으로 경주 부윤, 강원도 관찰사로 근무했다. 1748년(영조 24) 민백행(閔百行)을 대신해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로 해운군(海運君) 이연(李槤)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1752년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거쳐, 이듬해에는 병조참판을 지낸 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올랐다.

특히 1733년(영조 9) 2월 20일 교리로 임명된 조명겸은 그 해 6월 16일 영조에게 조광조(趙光祖)송시열을 배향하는 도봉 서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도봉 서원이 가진 토지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영조조명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묘소]

『임천 조씨 대동세보(林川趙氏大同世譜)』에는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인 죽산군 근삼도면 가곡리에 두 부인과 합장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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