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재실. 노산(盧山) 조사(趙篩)를 추모하기 위해 한양 조씨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노산 조사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묵언(黙言), 호는 노산이다. 매설헌(梅雪軒) 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매죽헌(梅竹軒)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 야득 마을에 있다. 경모재는 정면 3칸, 측면...
-
경상북도 구미시, 칠곡군, 김천시의 경계에 위치한 도립 공원. 금오산은 군사 요충지로 한양과 부산을 잇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이어서, 고대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군창(軍倉)과 군영(軍營)이 있었던 굳건한 산성과 산성 마을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와 임진왜란 때 군·관·민이 함께 피난을 했던 금오산성은 금오산 동쪽 계곡을 막은 외성(外城)과 정상 아래 넓은 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병참 부대. 캠프 캐롤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왜관읍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다.’ 이렇게 대답하면 너무나 상식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캠프 캐롤은 칠곡군 왜관읍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병참기지의 일종이다. 1959년에 부대 조성 공사를 시작해...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달방산(達坊山)의 서쪽(西)에 위치한다고 하여 달서(達西)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 칠곡군 상지면(上枝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동원, 서원, 석문의 일부를 병합하여 달서라 하고 칠곡군 지천면(枝川面)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달서리는 이언천(伊彦川) 양안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
매원마을에는 「대원군과 풍각댁 벼루사건」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풍각댁이라 불리는 이동형은 가난한 선비로서, 대사헌을 지낸 이원록의 현손이다. 그가 곡식이 3천 석이 넘는 부자가 되기까지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동형은 책을 읽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소똥과 개똥을 주워 모았다. 그 거름이 산 무더기처럼 되던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 거름을 팔라 했지만, 그는 팔...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포남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한양(漢陽)인 매설헌(梅雪軒) 조완규(趙完珪)는 조선시대 진사를 지냈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 성삼문, 박팽년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癸酉靖難) 때 잡혀 희양(淮陽)에 갇혔다가 이듬해 처형당했다. 부인 이씨는 세조가 신숙주의 노비가 되길 명하자 딸과 함께 우물에 빠져 죽었다. 1791년(정...
-
광주이씨가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집성촌을 형성하게 된 것은 광주이씨 선조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증손되는 좌통례(佐通禮) 이극견(李克堅)이 약 500여 년 전 성주목사가 되어 내려올 때 둘째 아들인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를 책방도령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지는 그 후 팔거현(八筥縣)[칠곡의 옛 이름]에서 가법을 지키는 최하(崔河)의 딸과 결...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공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제반 활동인 물류의 현황과 발전. 칠곡을 물류 중심도시라고 한다. 이런 별칭을 얻은 이유는 무엇이고 과연 물류 중심도시라는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최근 많은 기업들이 물류비 절감이 경영혁신의 최고 과제로 삼으면서 칠곡군이 각광을 받고 있다. 전국 제일의 물류 중심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
광주이씨의 시조는 이당(李唐)이다. 이당은 고려 후기 경기도 광주관아의 아전이었는데, 모시고 있는 태수 인화이씨의 사위가 된 뒤 생원시에 합격했다. 400년 아전 가문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사족(士族)으로 전환한 것이다. 광주이씨 문중에서는 이당이 신라시대 칠원성 호족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당을 시조로 하는 광주이씨 외에 두문동 72현 이양중을 시조로 하는 광주이씨...
-
경상북도 칠곡군에 동일한 인물을 시조(始祖)로 하면서 집성 세거한 성씨(姓氏). 성(姓)은 혈족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이것이 언제부터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인류 사회가 시작되는 원시 시대부터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원시 사회(原始社會)는 혈연을 기초로 하여 모여 사는 집단체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 모계(母系)...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삼국시대부터 도로를 따라 발달한 마필 공급 및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 영남대로를 따라 발달한 칠곡 지역에 산재하던 역원(驛院)을 말한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영남대로의 길목에 위치한 칠곡은 일찍이 많은 역과 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촌에 대한 현황에서 칠곡의 고평역에는 77가구가 거주하며 김씨(34%)...
-
조선시대 칠곡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던 간선 도로. 서울을 영남 지방과 연결하는 간선 도로이므로 영남 대로(嶺南大路)라고 하였다. 노폭은 대체로 4~8m이다. 노면은 황토로 피복되었으며, 비탈길 등의 일부 구간은 박석(薄石) 포장이었다. 영남 대로에 설치되었던 역원은 아래와 같다. 다부역(多富驛)은 소야고개 아래의 역이었고, 소야원(所也院)은 여행하는 관...
-
경상북도 칠곡군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와 미래의 발전 전망.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어느 지역이나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전이나 기록물에 의하여 그 역사를 알 수 있고 한편으로는 선조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알 수도 있다. 그럼 칠곡군...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포남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한양(漢陽)인 유계(遊溪) 조승선(趙承先)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50년에 건립한 재실이다. 칠곡군 석적읍 포남 3리의 청계마을에 있다. 저존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 구성은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
칠곡 출신의 행정인.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운계(雲溪)이다. 1924년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포남 3리에서 태어나 임시직 공무원에서 출발해 군수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42년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에서 고원(雇員)으로 공직을 시작한 조갑희는 공직생활 중인 1955년 협성상고를 졸업하였다. 칠곡군과 안동군, 경산군, 경상북도 내무국 등에서 근무하면서 실...
-
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노산(老山). 덕원부(德原府) 용진현(龍津縣)에서 세거한 사족의 후손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며 조선이 개국하자 한성으로 옮겨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한양을 본관으로 삼은 한양조씨로 지평(持平) 조완규(趙完珪)의 차자(次子)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야디기]에 입향한 한양조씨의 칠곡 입향조이다. 어머니는 양천허씨...
-
조선 후기 칠곡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한양조씨(漢陽趙氏). 초명은 조양래(趙陽來), 개명(改名)은 조서규(趙瑞圭), 자는 복초(復初),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덕원부(德原府) 용진현(龍津縣)에서 세거한 사족의 후손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한성으로 옮겨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한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
조선 전기의 충신.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매설헌(梅雪軒). 시조 조지수(趙之壽)의 6세손으로 충무공 조영무(趙英茂)의 손자이며 남원부절제사(南原府節制使) 조전(趙琠)의 장자이다. 경기도 광주 퇴촌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고 충절심이 강했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로서 안평대군, 성삼문, 박팽년과 교우하며 왕실의 심상치 않음을 염려하던 중 김종서(金宗瑞)가 황...
-
경상북도 칠곡군에 전해 오는 좁쌀 한 알로 성공한 총각의 이야기. 「좁쌀로 경상감사되다」는 하나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다음 행위가 생기는 결과가 계속 누적되는 형식을 지닌 이야기이다. 칠곡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칠곡군지편찬위원회가 채록하여 1994년에 발행된 『칠곡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칠곡의 어느 산골 마을에 가난하면서도 고집이 세고...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사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주(周)의 목왕(穆王)이 서언왕(徐偃王)을 정벌할 때 조부(造父)가 공을 세워 조성(趙城)에 봉해졌으므로 나라 이름을 따서 조씨(趙氏)라 성(姓)하여 조씨의 연원(淵源)을 이루었다. 한양조씨의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의 동래연대(東來年代)는 상고(詳考)할 수 없다. 조지수는 고려 때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