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칠곡지
-
조선시대 가산산성에 주둔한 군대의 군사훈련. 가산산성은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外城))은 1700년(숙종 26), 중성(中城)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하였고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군사들은 봄, 가을마다 군사 훈련과 산성 축조에 동원되었다. 『국역 칠곡지』 「성지(城池)...
-
고려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용력(勇力)이 뛰어난 무장으로 칠곡군 왜관읍에서 살았다. 대호군(大護軍)으로 1362년(공민왕 11)에 총병관 정세운(鄭世雲) 등과 함께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쳐, 이듬해 개경 수복(開京 收復) 1등공신에 기록되었고, 판사(判事)로 있으면서 홍건적을 격퇴한 공(功)으로 2등 공신에 기록되어 진국상장군(鎭國上將軍) 종2품에 올랐다. 1371년(공민왕 2...
-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열녀. 본관을 창녕(昌寧)으로 하는 박구홍(朴九泓)의 딸이고 본관이 밀양(密陽)인 박지운의 아내이다. 나이 18세에 결혼식 전 폐백을 받고 난 후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와서 머리 숙여 곡(哭)을 하는 처신은 남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눈을 감은 지 10여일에 시아버지가 쌀죽을 권하며 타이르니 부인이 말하기를 “남...
-
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동고(東皐). 배운룡(裵雲龍)을 시조(始祖)로 하고 배균(裵均)를 상중조(上中祖)로 하는 달성배씨이다. 문장과 올바른 행실로 명성이 났다. 1453년(단종 1)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 등과 도의(道義)의 사귐을 맺었다. 세조 때 여러...
-
조선시대 칠곡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치강(致强), 호는 농우(農寓). 시조(始祖) 서진(徐晉)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판서(判圖判書) 등을 역임하면서 공이 있어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져 달성[현재 대구광역시]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그곳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후손들이 본관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칠곡군 기산면 노석...
-
조선 말기 칠곡의 효자.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성전(聖傳). 시조 송맹영(宋孟英)은 고려 목종(穆宗) 때 간의대부총부의랑(諫議大夫摠部議郞)을 지내고 야성군에 봉하여져 본관을 야성으로 하는 야성송씨(冶城宋氏)이다. 직장공파 인의(引儀) 송응규(宋應奎)의 후손으로 칠곡군 칠곡읍 매천동[현 대구광역시 북구]에 세거지를 정한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의 후손이며 존순재(存順齋) 송...
-
조선 중·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호여(皥如), 호는 성와(省窩). 시조 송맹영(宋孟英)은 고려 목종(穆宗) 때 간의대부총부의랑(諫議大夫摠部議郞)을 지내고 야성군에 봉하여져 본관을 야성으로 하는 야성송씨(冶城宋氏)이고 직장공파 인의(引儀) 송응규(宋應奎)의 후손이다. 칠곡군 칠곡읍 매천동[현 대구광역시 북구]에 세거지를 정한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의...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충노(忠奴). 열부 곽씨의 종이었다. 임진왜란 시기 수남은 상전을 따라 산중으로 왜적을 피하였는데, 주인(主人)이 적에게 죽고 다만 8살 난 아이만 살아서 남아 있었다. 수남은 쌓인 시체 가운데서 주인집 식구들의 시신을 찾아 장사지냈는데, 양반 가운데 악한 사람이 어린 상전을 해치려 하자 수남이 업고 멀리 피하여 안전하게 보호하였다. 이로써 주인집...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열녀. 병자호란 때 남편이 전장(戰場)에서 세상을 떠나자 부모가 일찍이 과부가 되는 것이 민망하여 절개를 지키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칼로 머리카락을 끊어 죽어도 절개를 지킬 것을 맹세하고 수절하였다. 『국역 칠곡지』에 해당 내용이 전한다. 관청에서 옥지의 절개를 가상히 여겨 쌀과 고기를 내리고 포상하였다....
-
조선시대 칠곡 지역 출신의 열녀. 본관이 귀산(龜山)인 박승희(朴升禧)의 딸 박씨는 본관이 문화(文化)인 유재옥(柳在沃)의 아내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자애로웠으며 집안에 법도가 있었다.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겼고 남편 대접하기를 공손히 하였다. 남편의 병이 심해지자 하늘에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기를 빌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슬피 울고 통곡하다가 따라서 세상을 떠났다. 『국...
-
조선시대 칠곡 출신의 효자. 어려서 아버지 상(喪)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侍墓)살이 하였다.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가정 형편이 아무리 곤궁하여도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나르는 꿩이 품안에 떨어지니 시골 마을에서 효성의 감응(感應)이라 하였다.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조상에게 올리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본래 배운 것도 없으면서 효성이 지극하니 이것은 진실로 천성(天性)에서 얻은...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효부. 본관이 벽진(碧珍)인 승지(承旨) 이언영(李彦英)의 딸이다. 본관을 광주(廣州)로 하는 판서(判書) 이원정(李元禎)의 아내이다.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가 있는 가문에서 성장하였고 또한 예법과 제도가 있는 가문에 시집갔는데 지극한 덕(德)과 순수하고 후한 행실로 친척들의 칭송을 받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남에 이르러 예(禮)로서 장례식을 마쳤는데 슬퍼함이...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열녀. 시조(始祖)의 고향이 덕산(德山)인 이영진(李榮珍)의 딸이다. 시조의 고향이 인천(仁川)인 이재엽(李載燁)의 아내이다. 시집가서 얼마 되지 않아 불행히도 남편이 병을 얻어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느라 잠시도 게으르지 아니하였다. 병이 악화되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신의 복이 없고 사나운 팔자를...
-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열녀. 선비 이희춘(李熙春)의 아내이다. 남편이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는데 이 날 부인 이씨는 아이를 낳았다. 7일 뒤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럽게 통곡하고는 장차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이 몸이 만약 없다면 이 아이 또한 죽을 것이다. 차마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 남편의 가계를 이을 자식을 끊을...
-
조선시대 칠곡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종규(鍾奎). 강열공(剛烈公) 차운혁(車云革)의 후손이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를 섬김에 있어 정성과 힘을 다하고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품팔이를 하면서도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달고 맛있는 음식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슬퍼하고 몸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며, 3년이나 물고기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
-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국가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또는 행위. 충신이란 충성스러운 신하를 말한다.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못할 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 일에만 매달린다. 특히 나라가 망할 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여 자결하거나 은둔하는 등 망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백이와 숙제, 정몽주 등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