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98 |
---|---|
한자 | 栢谷山城 |
이칭/별칭 | 백곡 토성,이서국 성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175-1 일대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승규 |
현 소재지 | 백곡산성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175-1 일대 |
---|---|
현 소재지 | 백곡산성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 산2-1 일대 |
성격 | 성곽 |
양식 | 토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1∼2m[높이]|약 100m[길이]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와 이서면 고철리에 있는 토성.
[개설]
백곡산성(栢谷山城)은 고대 이서국의 왕성으로 알려져 있다. 백곡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해발 100∼120m의 구릉 남쪽 부분에 만들어져 있으며, 토루는 길이 200여 m에 이르고 높이 1∼3m, 폭 2∼3m를 이루기도 하나 대부분 경작에 의해 삭평되거나 밭둑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변에는 연질 토기 조각을 비롯하여 5∼6세기경의 신라 토기도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백곡토성은 이서국 시기 3∼4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신라에 복속된 이후에도 계속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경위]
고대 이서국의 왕성지로 알려져 있으나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지에서 분포하는 신라 토기 조각으로 보아 6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고학적으로 연구된 영남 지방의 토성 축조 시기를 고려할 때 3세기 말에서 4세기경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위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의 남쪽 구릉에 토루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 지점이 백곡산성의 위치로 추정된다. 남쪽 구릉의 끝 부분에 ‘이서국 성지(伊西國城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동쪽으로 토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형태]
백곡산성은 토루가 야산의 능선을 따라 경사면에 구축되어 있는데, 인근의 경산 임당 토성의 양상을 고려할 때 타원상의 형태로 구릉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경작으로 인해 외형이 뚜렷이 남아 있지 않으나, 야상 구릉의 남쪽 사면에 100여m의 토루 흔적이 남아 있다. 토루의 폭은 2∼3m이고, 높이는 1∼2m 정도로 훼손 정도에 따라 잔존 규모의 차이가 크다.
[현황]
백곡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해발 100∼120m의 야산 구릉 사면에 구축된 토성으로 성의 앞으로는 청도천변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토성은 남쪽 사면에 만들어진 토루를 통해 알 수 있으며, 토루는 밭둑으로 사용되고 있어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는 산정부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마을 입구의 구릉 끝까지 연결된다. 백곡 마을 입구가 되는 토성의 끝자락 부분에 ‘이서국 성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토성지 주변에서는 시대가 불명한 토기 조각을 비롯하여 6세기대의 신라 토기 조각도 채집된다.
[의의와 평가]
고대 이서국의 왕성지로 알려져 있으나 실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명확치 않다. 다만 1832년에 간행된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 고적조를 보면 이서 고성은 군의 북쪽 10리에 있으며, 4면이 모두 토축으로 주위가 일천여 척이며, 이곳을 이서 고지라 전한다고 하였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도 이서면 토평리를 이서국의 읍지라 하였으므로 이러한 기록에 근거하여 보면 백곡산성을 이서국의 도읍지로 추정할 수 있다. 이서국에 대한 역사 기록에 보이는 신라 금성의 공격과 죽엽군의 출현 기사를 고려할 때 이서국은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진한의 소국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