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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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寂寺浮屠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궁현 |
건립 시기/일시 | 1752년 - 대적사 부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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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적사 부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4 |
성격 | 부도 |
양식 | 석종형 |
관련 인물 | 풍엄 대사 순민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125㎝ |
소유자 | 대적사 |
관리자 | 대적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대적사에 있는 부도.
[개설]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대적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동학산(洞鶴山)에 있는 절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876년(헌강왕 2) 보조 체징(普照 體澄)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 초에 보양(寶壤)이 중창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방화로 불탄 뒤, 1689년(숙종 15) 서월 성해(瑞月 性海)가 크게 중수했다.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물 제863호 청도 대적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향각(香閣), 천왕문, 요사채가 있다.
극락전의 기단은 큰 석탑처럼 이중으로 되어 있고, 면석(面石)에 연꽃과 거북 무늬가 양각되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계단 측면에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 점도 주목된다.
대적사 부도는 대적사로 오르는 길목 오른쪽 석축 위에 놓여 있다. 몸돌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청도 대적사와 연관이 있는 풍엄 대사 순민의 묘탑임을 알 수 있다.
[건립 경위]
부도의 몸돌에 ‘건륭 십칠년 풍엄 대사 순민 임신 이월 초팔일 안(乾隆十七年豊嚴大師順敏壬申二月初八日安)’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752년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위치]
대적사에서 동쪽으로 입구 진입로 부근에 마련된 부도전 석축 위에 놓여 있다.
[형태]
높이 125㎝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로 몸돌은 원형에 가까운 팔각형이다. 몸돌 윗부분을 깎아 둥근 보주를 표현하고 있다. 기단부는 다른 돌로 만들어졌고 원형을 이루고 있다. 중간 부분에서 2단 처리하여 상하기단을 모방한 형태로 만들었다. 연꽃무늬 등의 문양은 조각하지 않았다.
[현황]
원래는 10여 기의 부도가 있었는데 6·25 전쟁 때 분실되었다고 전하고, 현재 풍엄 대사 순민의 부도만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전체적인 형태가 인도의 복발탑을 닮은 조선 시대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이다. 몸돌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풍엄 대사 순민의 묘탑임을 알 수 있으며, 1752년이라는 제작 연대도 알 수 있는 청도 지역의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