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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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貞谷書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성격 | 유묵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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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수장 |
소유자 | 한마 학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29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慶南 大學校 博物館)에 소장된 유묵첩(遺墨帖).
[개설]
『정곡서발(貞谷書跋)』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정곡서발』도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2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정곡서발』의 크기는 32㎝×22㎝이며, 전체 분량은 16쪽이다.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정곡서발』은 정곡(貞谷) 이수장(李壽長)[1661~1733]의 글씨를 보고 ‘창옹(滄翁)’이라는 사람이 직접 지어 쓴 글을 모은 서첩이다. 이 첩에는 이수장의 글에 대한 네 편의 ‘발문(跋文)’이 있고, 그 발문들을 모아 하나의 서첩으로 엮은 사연을 적은 글(乙未 暮春) 한 편 등 등 모두 다섯 점의 글이 실려 있다. 글씨는 모두 해서(楷書)와 행서(行書)로 썼다. 문장을 짓고 글을 직접 쓴 창옹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수장은 조선 후기의 서예가로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인수(仁叟)이고, 호는 정곡이다. 벼슬은 찰방(察訪)을 지냈다. 숙종(肅宗) 때에 사자관(寫字官)이 되어 어제시(御製詩) 8장(章)을 쓰고 또 금니(金泥)로 종왕첩(鍾王帖)을 임서(臨書)하여 숙종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709년(숙종 35)에는 사신으로 온 청나라의 연갱요(年羹堯)로부터 ‘동방 제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고, 1711년 통신사(通信使) 조태억(趙泰億)를 따라 일본에 갔을 때는 그의 글씨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하루에 수 십 명 씩 몰려와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글씨는 해서와 행서에 능하였는데, 중국 진대(晋代)의 왕희지(王羲之)의 필법을 익혀 이에 흡사한 글씨를 구사하였으며, 단지 중국에 보내는 문서를 쓸 때에는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석봉(石峰) 한호(韓濩)의 풍으로 하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서학(書學)의 원류를 찾아 각종 문헌을 수집, 정리한 『묵지간금(墨池揀金)』이라는 책을 만들어 남김으로써, 많은 후학의 지침서로 활용 되었다.